“여의도 정치권이 총선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야권이 반걸음 빨리 가고 있다. (중략) ‘제1야당 민주당’이 16일로 문을 닫았다. 대신 ‘민주통합당’이란 이름의 정당이 신장개업했다.”(중앙일보 2011년 12월 17일자 4면)
“국민의당 창당을 주도하고 있는 안철수 의원이 더불어민주당과 4월 총선에서 연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중앙일보 2016년 1월 18일자 6면)
2012년 제19대 총선과 2016년 제20대 총선 전 탄생했던 ‘민주통합당’과 ‘국민의당’이란 이름이 21대 총선을 앞두고 부활했다. 선거철마다 통합ㆍ분당ㆍ신당 등이 반복되고, 비슷한 단어를 조합해 당명을 짓다 보니 과거 사용된 당명을 똑같이 ‘재활용’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통합을 추진 중인 바른미래당과 대안신당, 민주평화당은 오는 17일까지 합당 작업을 완료하고 통합 신당의 당명을 ‘민주통합당’으로 합의했다고 14일 밝혔다. ‘민주통합당’이란 당명은 현재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2011년 12월부터 2013년 5월까지 사용했던 이름이다. 당시 제1야당이던 민주당(2008~2011년)과 시민통합당ㆍ한국노총 등이 통합하면서 당명을 민주통합당으로 정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세균 국무총리, 이해찬 민주당 대표, 이인영 원내대표 등이 모두 당시 민주통합당에서 활동했다. 현재 대안신당 소속의 박지원 의원은 구 민주통합당에도 소속돼 있었고, 새로 탄생할 민주통합당의 이름을 달고 총선에 출마할 예정이다. 7년의 세월이 지나 똑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당에서 활동하게 되는 것이다.
단어 순서만 다른 ‘통합민주당’도 있다. 2016년 5월 1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한 뒤 현재까지 존속 중이다. 이를 포함해 현재 당명에 ‘민주’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정당만 4곳(더불어민주당ㆍ민주평화당ㆍ통합민주당ㆍ민중민주당)이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해외의 경우 유권자들이 정당 자체에 일체감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는 인물 중심의 정치라서 지도자에 대한 일체감이 더 강하다”며 “대표가 누구냐가 정당 이름보다 더 중요해지고, 결국 썼던 이름을 또 쓰는 ‘급조 정당’까지 생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6년 2월 창당했던 국민의당이란 이름도 다시 등장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안철수신당’과 ‘국민당’이라는 이름으로 창당 신청을 했지만, 중앙선관위에서 두 이름 모두 사용을 불허하면서 생긴 일이다.
국민당까지 쓸 수 없게 되자 안 전 대표 측은 2년 전 바른정당과 합당 과정에서 사라졌던 국민의당을 다시 꺼냈다. 국민의당 당명은 선관위에서 허가해 줄 가능성이 크다. 현재 선관위에는 '국민새정당'이란 당이 등록돼 있다. 선관위는 13일 ‘국민당’과 ‘국민새정당’은 “뚜렷이 구별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지만, 2017년엔 ‘국민새정당’과 ‘국민의당’이 “뚜렷이 구별된다”며 국민새정당의 등록을 허가했다.
현재 당명에 ‘국민’이란 단어가 들어가는 곳은 4곳(국민새정당ㆍ국민참여신당ㆍ국민희망당ㆍ한국국민당)이다. 국민의당이 선관위 심사를 통과하면 여기에 5곳이 된다.
현역 의원 1명(김종훈 의원)이 속해 있는 원내정당 민중당의 경우에도 과거 똑같은 간판을 건 정당이 여러 차례 부침했다. 1965년 제1야당이었던 민정당과 민주당이 통합해 만든 민중당, 그리고 1990년 재야 운동권 세력을 중심으로 창당한 민중당 등이다. 1965년 민중당에는 윤보선 전 대통령이, 1990년 민중당에는 이재오 전 의원과 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속해 있었다.
엇비슷한 이름의 정당이 반복되는 것에 댛 박상헌 정치평론가는 “선진국 주요 정당들은 집권에 실패해도 당명을 바꾸거나 페인트칠을 다시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 정치판은 선거만 하면 '떴다방'식 당이 생기고 인테리어를 바꾼다. 한국 정치의 슬픈 초상이다”라고 비판했다. 김성수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 특유의 단절과 청산의 문화가 당명에 투영됐다"며 "잘못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쉽게 간판만 바꿔 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정민ㆍ김홍범 기자 yunj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