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안보공약 재천명이 "성과"|한국 쪽에서 보는 노 대통령 방미 현지 교수 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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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노태우 대통령은 18일 이번 방미의 하이라이트인 미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로 사실상 방문 일정을 마치고 워싱턴을 떠났다. 그는 정상회담·의회연설 등 주요행사 결과에 대단히 만족해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쪽에서는 그의 방문에 대해 어떤 인식인지 조지 워싱턴대의 해럴드 힌튼 교수(정치학) ·조지타운대의 재미학자 김승환 교수(외교학)와 한남규 본사워싱턴특파원과의 긴급현지 좌담을 통해 알아본다. <편집자주>
한 특파원=노 대통령은 18일 오전 자신의 미 의회연설에 흡족하게 생각할만하다. 연설에 대한 의석의 반응은 매우 진지하고 우호적인 게 완연했다. 미국인 일반의 반응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힌튼 교수=미 언론이 어떤 반응일 지 두고 볼 일이다. 미 언론은 우선 전임자보다 훨씬 노 대통령을 우호적으로 다루고 있다.
연설의 특징을 얘기하자면 「폭탄선언」이나 새로운 정책선언이 없었다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해서 실수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나 일본 정치지도자들이 누리지 못한 이번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기회를 매우 이례적인 영예로 생각했음직 하다. 그는 「달걀 위를 걷듯이」 매우 조심스럽게 올바른 얘기들로 일관했다. 훌륭한 연설이었다.
김 교수=우리의 정치적 상황을 요약 설명하면서 양국 안보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을 비롯해 여러 현안을 골고루 언급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발전을 위한 동반자관계」라는 주제로 연설하면서 많은 부분의 내부문제들에 관해 미 의원들에게 브리핑한 인상을 받았다.
동반자관계의 발전을 위해 한국은 무엇을 하겠고 미국은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해주어야 할 것인지에 관해 메시지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힌튼=그런 점에서 그의 작년 10월 유엔총회 연설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여담이지만 미국사람들의 관심이 샌프란시스코 지진에 쏠려있어 이점 노 대통령에게는 아쉬운 일이었다.
한=한국 정부는 이번 방문이 미 요구에 따라 이루어졌다고 말해왔고 미 관계자들은 사적대화 자리에서는 기본적으로 한국 측 희망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국 측 얘기대로라면 부시 행정부가 무슨 얘기를 하려했던 것인지에 대해 궁금증이 남는다.
힌튼=초청에 어떤 특별한 의도나 수수께끼가 있었다고 보지 않는다.
한=한국 측 관계자는 노 대통령의 북방정책에 관해 미국이 내면적으로 우려해온 점을 지적한 바 있다. 한국의 진정한 의도를 궁금하게 생각해왔다는 얘기로 해석된다.
김=실제로 그것은 복잡한 문제다. 중·소 뿐 아니라 동구 여러 나라들과의 관계를 개선함으로써 통상 등 경제분야 뿐 아니라 대북한 관계에 미치는 정치적 효과 등 한국이 얻는 이익은 지대하다. 물론 소련을 제1의 적으로 생각하는 미국은 이에 대해 매우 조심스럽다. 미 정책관계자·학자 등은 소련의 의도에 의심을 품고있다. 이런 점에서 미 정책입안자들의 압력이랄까, 희망은 한국이 이런 나라들과의 새로운 관계를 추진하는 데 있어 매우 신중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한=노 대통령의 방미와 관련하여 한국민이 갖고 있었을 가장 큰 궁금증은 주한 미군의 장래문제에 관해 두 지도자가 안보공약 재확인 외에 정책전환 방향 등 실질적인 논의를 벌이지 않을까 하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해 부시 대통령은 북한 군사위협이 존재하는 한 미군은 계속 주둔한다고 말했지만 회담내용을 브리핑한 리처드 솔로몬 국무부 아시아-태평양 담당차관보는 행정부 검토의 결과로 「일부조정」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해 여전히 주한 미군 장래문제는 안개 속에 남은 셈이다.
힌튼=부시 행정부는 매우 조심스런 행정부다.
금=철수 논의가 현 추세임은 사실이다. 그러나 동북아의 군사적·전략적 여건에 중대 변화가 생기지 않는 한 미국이 군대를 한국으로부터 급작스레 빼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백악관·국무부·국방부 등 행정부는 미국 이익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미군을 그대로 남겨두려 하는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설혹 한국이 지진처럼 신속행동을 취한다 하더라도 부시 행정부는 매우 서서히 움직일 사람들이다. 내가 갖고있는 견해는 한국에서 뿐 아니라 다른 어느 곳에서건 돈을 좀 아끼자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이들은 병력숫자를 줄이는 방법보다는 군비현대화와 군사력증진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고 있을 지 모른다.
반면 의회와 미디어의 많은 사람들은 행정부가 어떤 조치를 취하도록 압력을 가하려 한다. 따라서 부시 행정부가 노 대통령에게 지금 무슨 얘기를 했건 앞일은 예측하기 어렵고, 단계적 감축은 그 방안의 하나가 될 수 있다.
한=부시 대통령이 노 대통령에게 미군 장래문제와 관련해 한국민을 놀라게 하지 않겠다고 한 말은 카터 대통령처럼 철군계획을 세우지 않겠다는 뜻일 수도 있고 급작스런 철군은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도 해석이 되는데….
김=내가 보기에는 급작스런 철군은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생각한다.
힌튼=그것은 또 일본을 겨냥한 닉슨형 쇼크를 두고 한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부시는 최소한 집권이래 누구도 놀라게 하지 않았다.
한=노 대통령의 의회연설에서 한국의 자유경제·시장개방 노력을 강조하면서도 특히 농업부문 등의 개방에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통상법개정 등 해외시장 개방압력의 돌풍이 여전히 거센 의회가 그의 설득을 수용할 지 궁금하다.
힌튼=통상문제를 세부적으로 충분히 알지 못하지만 수용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
김=90년대 중반이면 5년 후나 되는데 그것은 그때 가서 한국의 경제여건이 어떠할 것이냐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본다. 경제성장률이 둔화되고 있는 점등은 우려의 대상이다.
힌튼=미국이 일본에 대해 품고있는 화를 한국에 대해 풀고있다는 한국 사람들의 주장은 옳은 얘기라고 생각한다. 일본으로부터 야기된 문제는 미국 사람들의 관심을 다른 곳에까지 확대시킴으로써 한국과 대만이 고초를 겪고 있지만 이것은 또한 불가피 한 것도 사실이다.
한=노 대통령은 의회연설에서 이제 한국의 민주주의는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힘이 되었다고 자신의 민주화실적을 설명, 미 의원들의 큰 박수를 받았고 부시 대통령에게는 한국에 정치범이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에도 불구하고 톰포글리에타 의원(민주) 같은 사람은 이날 곧 이어 열린 노 대통령의 내셔널 프레스클럽 연설에 쫓아와 한국의 민주화가 뒷걸음치고 있다며 인권현황에 대한 질문을 내놓았다. 미 의원 중에는 인권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있는 사람들이 상당히 있다.
힌튼=양국 관계에 대한 일반적인 미국인의 인식은 매우 긍정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반미) 학생데모를 심각하게 보지 않는다. 대사관저에 난입하는 사태가 아닌 한 묵살할 수 있는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웃음)
김=요약하자면 한미 현안의 핵심은 안보문제와 통상문제다. 그리고 이번 정상회담은 실무방문이었다. 따라서 어떤 문제에 어떤 형태의 해결이 있었느냐가 중요한 데 한미 어느 쪽에도 눈에 보이는 성과를 찾아볼 수 없었던 것 같다.
물론 대화를 가짐으로써 우의를 다지고 상호이해를 증진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한=한국 정부로서는 미국의 대한안보공약 재천명에 의미를 둘 것으로 본다.
힌튼=『놀라게 하지 않겠다』는 부분이 아마 가장 큰 얘기일 것 같다. 【워싱턴=한남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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