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민 환영' 팻말 붙었지만···이천 주민들 "착잡하다" 속앓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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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전 경기도 이천시 합동군사대학교 국방어학원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발원지인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 남아있던 교민들이 탑승한 버스가 들어가고 있다. [뉴스1]

12일 오전 경기도 이천시 합동군사대학교 국방어학원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발원지인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 남아있던 교민들이 탑승한 버스가 들어가고 있다. [뉴스1]

12일 오전 9시쯤 경기도 이천 합동군사대학교 국방어학원으로 들어가는 길목. ‘편히 쉬다가 건강하게 돌아가기 바랍니다’ ‘우한 교민 여러분, 환영합니다!’ 등과 같은 현수막이 길가에 10여개 걸렸다. 국방어학원 인근은 중국 우한(武漢)에서 3차 전세기로 귀국하는 교민과 중국 국적 가족을 맞기 위한 준비로 분주한 모습이었다.

현장에 현수막을 설치하러 온 업자 조병길(70)씨는 “현수막 설치 주문을 전날 5개 정도 받았다”며 “눈에 잘 띄는 곳에다 현수막을 설치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가 걸고 있던 현수막에는 ‘이황리 주민 여러분 감사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황리는 국방어학원이 있는 마을이다. 조씨는 “우한 교민을 보면 같은 국민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했다.

국방어학원으로 들어오는 차들은 모두 한 차례 소독을 해야 한다. 채혜선 기자

국방어학원으로 들어오는 차들은 모두 한 차례 소독을 해야 한다. 채혜선 기자

국방어학원으로 들어가는 모든 차량은 길목에서 한 차례 소독을 거쳐야 숙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현장에 지원 업무를 나온 한 경찰은 “국방어학원 진·출입로에는 이 같은 현장소독시설을 운영해 드나드는 모든 차량이 소독을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교민 도착에 앞서 국방어학원을 찾은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엄태준 이천시장을 만나 “이천시민들이 높은 시민의식을 보여줘 경기도 전체 자존심을 살렸다”고 말했다. 이후 이 지사는 이황1리 마을회관을 찾아 이황리 주민들을 만나러 갔다.

3차 귀국 우한교민·중국가족 140명 이천 도착

3차 전세기를 타고 귀국한 교민들이 탄 차량이 국방어학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채혜선 기자

3차 전세기를 타고 귀국한 교민들이 탄 차량이 국방어학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채혜선 기자

3차 전세기로 귀국한 교민과 중국 국적 가족 140여 명은 이날 오전 10시 45분쯤 국방어학원에 도착했다. 이 가운데 중국 국적(홍콩 1명 포함)은 65명, 미국 국적자는 1명이다. 이들과 함께 전세기에 탔던 유증상자 5명과 증상이 없는 자녀 2명은 공항에서 국립중앙의료원으로 이송됐다.

교민들을 나눠 실은 25인승 버스 20대는 선두에 선 순찰 차량의 안내를 받으며 정차 없이 차례로 어학원으로 들어갔다. 경찰은 어학원 주변에 병력 200여 명을 배치하고 외부 진입을 통제한 뒤 교민들을 맞았다. 각 버스 기사들은 전신 감염 방지복과 마스크를 입고 운전대를 잡았다.

교민과 중국인 가족들을 태운 버스가 12일 오전 임시 생활시설인 경기 이천시 국방어학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뉴시스]

교민과 중국인 가족들을 태운 버스가 12일 오전 임시 생활시설인 경기 이천시 국방어학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뉴시스]

버스에 탄 교민들은 지친 듯 고개를 숙이거나 잠을 청했다. 창밖을 내다보며 격리 생활을 하게 될 어학원 쪽을 바라보는 교민들도 일부 있었다. 앞서 1차와 2차 우한 교민이 입소할 때와 다르게 이날 3차 교민이 들어갈 때는 이곳 인근 주민들의 반발은 없었다.

이날 교민들이 탄 버스가 국방어학원으로 들어간 걸 지켜본 안용근 이황5리 이장은 “직접 와서 보니 시설도 잘돼 있고 걱정 없다”며 “오늘 직접 나와 본 건 확인하려는 차원이다. (주민으로서) 크게 동요하는 건 없다”고 말했다. 또 국방어학원 주변 곳곳에 걸려있는 응원 현수막에 대해선 “주민들이 걸었다기보다 상인들이나 협회에서 내걸었다”며 “환영 의미보다는 (교민들이 집으로) 잘 돌아가라는 의미로 보고 있다”고 했다.

“마음은 여전히 착잡” 한숨 쉬는 주민들 

12일 오전 경기도 이천시 합동군사대학교 국방어학원에 우한 교민들이 탑승한 버스가 들어가고 있다. [뉴스1]

12일 오전 경기도 이천시 합동군사대학교 국방어학원에 우한 교민들이 탑승한 버스가 들어가고 있다. [뉴스1]

다만 일부 이황리 주민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불안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이날 교민들이 국방어학원에 입소한 후 이항1리 마을회관에서 만난 70대 여성 A씨는 “도지사가 오면 뭐하냐. 더 착잡하다. 나 같은 사람에겐 전달된 내용도 없다”며 “자식들도 걱정을 많이 한다. (시에서) 마스크나 손 세정제를 배부해줘도 양은 모자라다”고 말했다.

이황1리 마을회관 근처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50대 여성 B씨는 “국방어학원으로 우한 교민이 들어온다는 소식이 보도된 후 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다. 매출 타격이 크다”며 “교민들이 오니까 더 걱정된다. 사람들이 발길을 돌리지 않을까 속앓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매출 외적으로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옮을까 싶어 우려스러운 부분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입국한 교민들은 입소 절차를 거쳐 외부와 차단된 채 1인 1실에서 24시간 생활하며 14일(입소일과 퇴소일 제외)간 국방어학원에 머물게 된다.

이천=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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