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 골프] 산림청장 설득해 에버랜드 허가해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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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남동 산 118-1에 위치한 은화삼CC는 한때 쌍용그룹 소유였다. 그 뒤 쌍용그룹이 해체되면서 개인에게 넘어갔다. 1993년 6월8일 개장한 18홀짜리 회원제 골프장인 은화삼CC는 전설적인 골퍼 아놀드 파머가 설계했다. 정교한 샷을 요구하는 파머의 의도가 코스 설계에 반영돼 거리는 길지 않은 편이지만 호락호락 정복을 허용하지 않을 만큼 까다롭다. 나이가 들어 비거리에서 손해를 많이 보지만 세컨드 샷과 어프로치가 매우 정교한 JP에게는 딱 들어맞는 코스다. 그래서 그는 종종 이 골프장을 찾는다. JP가 은화삼CC를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전속으로 돌봐주는 남자캐디 2명이 있어서다.

"노련한 남자 전속캐디가 둘 있었는데 얼마 전에 한 명이 그만뒀어요. 친구 사업을 돕기 위해 그만뒀다고 합디다. 그 캐디들은 플레이에 개입하지 않고 슬쩍 조언을 하는 데 기막히게 잘 들어맞아요. 슬그머니 뒤에 와서 '저기 홀 오른쪽이 약간 들어갔으니 왼쪽으로 쳐 보세요'라고 하면 영락없이 공이 홀 근처로 굴러가다가 오른쪽으로 흘러요. 캐디는 참모 역할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캐디가 얼마나 중요한 지는 박세리나 타이거우즈의 경우를 보면 알아요. 언젠가 캐디를 잘못 바꿨다가 두 사람 모두 슬럼프에 빠진 일이 있어요. 그래서 정치가나 경영자도 참모를 잘 둬야 합니다."

얼마 전 JP는 은화삼CC의 소유주였던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과 라운딩을 했다. 괜한 구설수가 싫어 재벌 2세들과는 거의 골프를 치지 않는 JP지만 김 전 회장에 대해서만은 달리 생각한다. 공화당 시절 정치적 고락을 함께 했던 쌍용그룹 창업주인 성곡 김성곤씨의 장남이라서 아들처럼 각별하게 생각한데다, 품성이 곧아 평소 아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은 그룹 경영에서 손을 뗀 상태이므로 함께 골프를 친다 한들 말이 나올 여지도 없었다.

"성곡도 골프를 잘 쳤지만 아들(김석원 전 회장)은 더 잘 쳐요. 폼을 보면 제대로 배웠어. 드라이버는 250 ̄260야드 정도 호쾌하게 날리지만 세컨드 샷을 가끔 실수할 때가 있어요. 실수하는 것을 보고 '심로(心勞:마음고생)가 컸던 모양이야. 마음이 평온하지 못하니 전만큼 샷이 좋지 못하구먼'이라고 내가 말하면 아무 대답 없이 씁쓸하게 웃곤 했지요. 훌륭한 친구인데 참 안됐어.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것 없애고 은화삼까지 남의 손에 넘어갔으니까 말이야. 요즘엔 가끔 성곡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성곡미술관에서 아버지에 대한 공경과 그리움의 마음을 떠올리는 모양입디다. 이병철씨나 정주영씨 같은 재계 원로들도 성곡을 만나면 '아들 잘 뒀다'고 칭찬을 많이 했어요. 된 사람이야. 그런데 단 한가지 아버지 유훈을 어긴 게 잘못이었어요. 성곡이 숨을 거두기 전에 '너는 절대 정치할 생각하지 말아라. 실업에만 몰두해라. 애비가 정치 때문에 절단나지 않았나.'라고 아들에게 신신당부를 했답니다. 하지만 결국 민정당 모 실력자에게 끌려 정치에 발을 담그고 말았지. 애석하기 그지 없어요. 나는 정치는 허업(虛業)이고 사업은 실업(實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실업하는 사람은 실업만 해야 한다고 봅니다. 실업은 과실을 따먹는 것이지요. 좋은 과실을 따먹으려면 과실만 잘 키워야지 딴 짓을 해선 안 되지. 비료도 주고, 적당히 수분도 제공하고, 불필요한 것은 잘라주고, 클 놈만 키우는 등 언제나 가꾸는 방법을 생각해야지 엉뚱한 생각을 하니 나무가 잘 클 수 있나. 허업과 실업을 둘 다 잘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허업을 버리고 실업만 한 사람들은 다 잘 됐지 않습니까. 삼성 창업주 이병철씨, 예스코(전 극동가스) 명예회장 구두회씨, 한진그룹 조중훈씨, 금호그룹 창업주 박인천씨 같은 분들 보세요. 일본에 이런 말이 있어요. 누가 큰 기와집을 지으면 미장이들이 벽을 바르면서 '2대째에 가면 남의 손에 넘어갈 텐데 뭐 하러 이렇게 큰 집을 짓나'라는 말을 해요. 하지만 금호그룹처럼 2세들이 잘 해나가고 있는 기업도 있어요. 세상 이치는 좋은 일을 했다고 그 혜택이 모두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멜론 재단의 걸프사를 울산으로 끌어들여 우리나라 최초의 정유 공장인 대한정유를 만든 것도 나였고, 워커힐 호텔을 세우게 한 것도 나였지만 그 혜택은 SK가 보고 있지 않습니까. 내가 그렇게 욕을 먹어가며 세운 워커힐이 지금은 수천억 짜리 재산이 됐을 겁니다. 하지만 고생은 자기가 하고 득은 남이 봤다 해서 그걸 탓하면 안 돼요. 그게 어쨌든 민족과 국가에 도움되는 결과로 나타났으면 된 거지요. 나는 돈이 내 호주머니에 없어도 남의 호주머니에 있어서 대한민국 안에서 돌고 있으면 국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예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전대리 310번지에 위치한 삼성에버랜드는 76년 4월에 국내 최초의 대규모 가족농원으로 문을 열었다. 당시에는 용인자연농원이란 간판을 달았다가 96년 3월에 지금 이름으로 바꿨다. 약 450만 평의 광활한 공간에 건설된 에버랜드는 시민들이 자연 속에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위락시설로 자리잡았다. 그 속에는 글렌로스라는 잘 가꿔진 퍼블릭 골프코스까지 갖추고 있어 골프 애호가들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 그러나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처음 용인자연농원 건립을 추진할 당시만 해도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지금 에버랜드가 있는 땅은 절반 가까이가 본래 산림청 소유였습니다. 이병철 회장이 내게 찾아와 '유럽 각국의 티보리나 미국의 디즈니랜드 같은 테마파크를 국내에도 만들고 싶어 토지를 매입하고 있는데 산림청이 막무가내로 반대하고 있어 골치 아픕니다'라고 하소연을 하지 뭡니까. 산림청이 소유하고 있는 땅을 매입하지 않으면 일을 추진하기 힘들다는 겁니다. 괜히 내가 나섰다가 말썽이 나지 않을까 생각도 했지만 이 회장 말을 들어보니 일리가 있는 겁니다. 당시 이 회장과는 인간적으로 무척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5.16 군사혁명 직후 일본에 머물고 있는 이 회장을 불러와 경제인협회를 만들게 한 것도 납니다. 무슨 일이 생길까 두려운 나머지 귀국을 꺼리는 이 회장에게 '우리가 남부럽지 않게 살아나갈 수 있는 길은 수출입국(輸出立國)으로 돈을 버는 길밖에 없습니다. 경제인들이 밖으로 나가 돈을 끌어와 마음대로 공장을 짓고, 사업을 하도록 돕겠습니다. 1차 산업인 농업만으로는 잘 살 수 없으니 2차, 3차 산업을 키워주세요.'라고 설득을 했지. 쉬운 것 같지만 사업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못합니다. 이병철 회장 같은 분이 있었기에 이만큼 나라경제가 발전했지요. 이 회장이 용인자연농원 건립을 추진할 당시 난 총리를 하고 있었어요. 산림청장을 불러 이 회장이 봐둔 땅을 가리키며 '여기 지도를 보니 모두 야산이구먼. 잡관목들만 무성한 이곳을 산림청이 관리해봐야 큰 가치가 없을 듯 하이. 이곳에 티보리나 디즈니랜드 같은 걸 만들면 우리 자손들이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장소가 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협력해줄 텐가'라고 설득했어요. 하지만 산림청장이 내 말을 듣고도 '안됩니다'라고 단호하게 거절하는 거야. 잘못하면 목이 달아날 수도 있으니 그랬겠지. 그래서 내가 '덮어놓고 안 된다고만 하지 말고 실리를 따져봐라. 몇 십 만평인지, 몇 백 만 평인지 모르겠지만 딴 곳에 대토(代土)를 받으면 되지 않는가.' 내가 그 만한 값어치의 땅을 다른 곳에 사서 국토로 제공받으라는 아이디어를 내자 산림청장이 '그렇게 해보겠습니다'라고 그제서야 수락하는 거야. 그렇게 해서 오늘날 국민에게 편안한 휴식공간을 제공하는 에버랜드가 탄생한 겁니다."

김국진 기자.bitkun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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