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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진하차 유도하려고 늦췄나…김의겸 이후 남은 건 정봉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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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 [중앙포토]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 [중앙포토]

“이번에도 한 박자가 늦네”

지난 3일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이 페이스북 글을 통해 총선 불출마 의사를 밝히자 더불어민주당 한 의원은 이렇게 반응했다. 그는 “지난주 당에서 직간접적 통로로 김 전 의원에게 출마 포기를 권고한 것으로 안다. 이미 여론은 나빠진 뒤 아니냐”라고도 했다. ‘버티는’ 김 전 대변인과 ‘털어내려는’ 당의 신경전 끝에 결국 서로에게 상처만 남겼다는 의미다.

'지역구 세습' 논란에 선 문희상 국회의장의 아들 더불어민주당 문석균 의정부갑 상임 부위원장이 1월 23일 제21대 총선 출마를 포기했다. 연합뉴스

'지역구 세습' 논란에 선 문희상 국회의장의 아들 더불어민주당 문석균 의정부갑 상임 부위원장이 1월 23일 제21대 총선 출마를 포기했다. 연합뉴스

민주당이 논란에 휩싸인 후보를 ‘자진 하차’ 방식으로 거취를 정리하고 있다. ‘세습 공천’ ‘아빠 찬스’ 논란이 일었던 문희상 국회의장의 아들 석균씨는 지난달 23일 “제가 감당해야 할 숙명”이라며 총선 출마 의사를 접었다. 민주당 2호 인재 원종건(27)씨도 데이트 폭력 의혹이 제기된 이튿날(지난달 28일) “영입인재 자격을 반납하겠다”고 한 뒤 탈당계를 냈다.

원씨는 현재 성폭행 의혹은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그는 4일 페이스북에 “합의 없는 성관계를 한 적이 없고 이 과정을 불법으로 촬영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영입인재 2호인 원종건 씨가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미투 의혹 관련 기자회견을 마치고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 영입인재 2호인 원종건 씨가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미투 의혹 관련 기자회견을 마치고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뉴스1]

문씨나 원씨, 김 전 대변인의 불출마나 탈당은 비슷한 경로를 밟아왔다. 공천 세습, 부동산 투기, 미투 등 인화성이 큰 논란의 한복판에 섰다. 여론이 악화됐고, 당도 총선 판세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했다. 이 과정에서 각자 억울함으로 호소했지만 결국 “선당후사의 마음”(문석균), “당에 누를 끼쳤다”(원종건), “민주당이 총선에서 압승하길 기원한다”(김의겸)면서 자진 하차를 택했다.

당 안팎에선 “여론 악화라는 경고음이 울리고 한참 지난 뒤에 나온, 타이밍 놓친 손절매”라는 비판이 나온다. 민주당 한 당직자는 “부동산 투기나 미투 등은 선거판 자체를 흔들 수 있는 대형 악재인데 당이 선제적으로 대응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반면 일각에선 “당 지도부가 직접 공천 배제나 제명 조치를 했다면, 당사자는 '피해자 프레임'으로 탈당 후 무소속 출마 등을 감행했을 것"이라며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시간 끌기는 불가피했다"라고 했다.

최근 여론 동향은 여권에 경고음을 주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31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는 긍정평가 41%, 부정평가 50%였다. ‘조국 사태’가 한창이던 지난해 9~10월과 비슷한 수준이다. 민주당 지지율은 34%로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가장 낮은 수치였다(※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지난달 22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21대 총선 입후보자 교육연수에 참석한 정봉주 전 의원. [연합뉴스]

지난달 22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21대 총선 입후보자 교육연수에 참석한 정봉주 전 의원. [연합뉴스]

정치권 시선은 이제 정봉주 전 의원에게 향한다. 정 전 의원은 2018년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졌다가 미투 논란에 휩싸여 중도하차했다. 그는 성추행 의혹을 보도한 기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복당한 뒤 서울 강서갑 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 핵심 당직자는 “미투 운동 이후 젠더 폭력 문제에 대해선 당이 무관용 원칙을 내세우지 않았느냐”며 “솔직히 정 전 의원이 알아서 결단을 내려주길 원하는 기류”라고 전했다. 당 내부적으로는 공천 부적격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정 전 의원은 지난해 10월 나온 법원의 무죄 판결문을 언론에 전달하며 미투 의혹의 부당성을 적극 소명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선 “1심이 무죄로 나왔는데 정 전 의원에게 불출마를 강제할 순 없지 않나"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

김형구 기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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