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마스크 대란…메르스 겪고도 배운 게 없었던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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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어이없는 현실이다. 중국에서 사망자가 늘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는 가운데 국내에서 마스크 품귀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대형마트·약국·편의점·온라인 쇼핑몰 곳곳에 ‘품절’ 표시가 나붙었다. 수요가 폭증한 데다 일부 국내 유통업자와 중국 보따리상들이 마스크를 매점매석하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물량을 확보한 몇몇 판매상은 이 틈에 값을 최대 10배로 올려받고 있다. 서민들이 코로나바이러스보다 마스크 값을 더 겁낼 정도다. ‘금(金)스크’란 신조어도 생겼다. 중국을 돕겠다며 마스크 총 300만 장을 보낸 정부의 처사에까지 원망이 쏟아지는 판이다. 시민의식 또한 실종됐다. 한 장씩 쓰라고 서울시가 지하철역에 비치한 공짜 마스크는 뭉텅이째 집어 가기 일쑤라고 한다. 지하철역에 놓아둔 손 세정제가 통째로 사라지는 바람에 쇠사슬로 묶어 놓는 웃지 못할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정부는 뒤늦게 마스크 품귀 대응책을 내놨다. “폭리를 노리고 사재기하면 2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겠다”고 그제 발표했다. 국내 마스크 생산량도 늘리겠다고 한다. 그저 한숨이 나올 따름이다. 마스크 품귀는 처음 겪는 일이 아니다.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때도 시중에 마스크와 손 세정제가 동났다. 그런데도 역대 정부는 배운 게 없었다. 마스크 같은 필수 물품을 비축하는 등의 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나마 메르스 때는 중국에서 긴급히 마스크를 수입해 부족 사태를 진정시켰다. 지금은 반대로 중국이 한국산 마스크의 블랙홀이 되다시피 하면서 국민은 불안과 혼란을 느끼고 있다.

마스크와 손 세정제 등은 생활 속 감염으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필수 방호책이다. 부족하면 그러지 않아도 위축될 일상 활동이 더 움츠러들고, 경제는 한층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감염병이 창궐할 때 어떻게 공급할 것인지, 정부가 계획을 세워 놓았어야 마땅하다. 현행 ‘비상대비자원 관리법’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사태’에 대비해 인력과 물자를 확보해 놓도록 하고 있다. 과거 신종 전염병 사태도 포함하도록 법을 고치려다가 무산된 바 있다. 이참에 법·제도를 정비해 감염병 대처 물자와 인력을 확보할 기틀을 마련하고 마스크 같은 필수재를 비축해야 한다. 이번에도 다시 ‘사재기 처벌’만 내놓고 그쳐서는 안 된다. 소를 잃었더라도 외양간은 튼튼히 고쳐야 할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