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체계적 정부 대응과 성숙한 시민의식이 최고의 백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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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29일 홍콩대 연구팀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에 대한 예방백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임상실험 등 시판까지 1년가량 걸린다”고 단서를 달았지만 최근 나온 뉴스 중 가장 반가운 소식이다. 중국과 미국도 백신 개발에 총력을 다하고 있어 그 시기가 더욱 빨라지길 기대한다.

맹목적인 ‘중국인 혐오’ 확산 막아야 #오락가락 정부 방침이 아노미현상 초래 #일관된 정책으로 국민 신뢰부터 쌓아야

현 단계에서는 백신 개발뿐 아니라 감염자가 더 이상 늘지 않도록 방역을 철저히 하고, 사회 혼란이 커지지 않도록 힘쓰는 일이 중요하다. 현재까지 밝혀진 우한 폐렴의 치사율은 4% 전후다. 물론 더 이상의 사망자가 나오지 않게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2003년 사스(9.6%)나 2015년 메르스(34.5%)에 비하면 불행 중 다행이다. 일주일 내 치사율이 최대 90%에 달하는 에볼라와 비교했을 땐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한국 사회는 이미 아노미(anomie·사회질서의 붕괴로 빚어진 대혼란)의 초입이다. 일부 어린이집에선 중국인이나 중국동포 자녀의 등원을 제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어떤 식당은 아예 ‘중국인 출입금지’를 써붙였다. 23일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온 중국인 입국금지 국민청원엔 57만 명(29일 기준)이 참여했다. 중국인에 대한 맹목적 ‘제노포비아(xenophobia·외국인 혐오)’로 확전되는 양상이다.

인터넷 댓글은 더욱 노골적이다. 중국인 및 이들과 밀접한 지역에 대한 혐오 표현이 넘쳐난다. 우한에서 송환되는 교민들의 격리수용 장소를 놓고 때아닌 지역갈등 논란도 벌어졌다. 또 “중국인들이 공짜 치료를 노리고 한국으로 몰려온다”는 식의 가짜 뉴스도 퍼지고 있다.

지금 상황에선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수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시민들의 높은 질서의식이 위기 돌파의 묘약이 된 것처럼 시민 각자의 차분하고 합리적인 대응이 중요하다. 다소 불편하더라도 먼저 배려하고 양보하는 마음자세도 갖춰야 한다. 전염병은 ‘과학’의 문제이지 ‘감정 표출’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성숙한 시민의식의 발현을 정부의 미숙한 대응이 방해하고 있는 점은 아쉽다. 첫 번째 확진자가 발생한 지난 20일부터 지금까지 정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오락가락했다. 전염병은 감염 자체도 문제지만, 감염 우려에서 비롯되는 불안과 공포가 사회 혼란의 더 큰 원인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 당국의 일관성 있고 신뢰할 만한 대응이 필요하다.

정부는 28일 네 번째 확진자의 접촉자 수를 놓고도 96명(평택시)과 172명(질병관리본부)으로 다른 숫자를 발표했다. 같은 날 서울시교육청은 개학 연기를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얼마 후 교육부는 ‘검토하지 않는다’고 했다. 29일에는 우한에서 송환되는 한국인의 격리시설을 천안이라고 발표했다가 하루 만에 아산·진천으로 바꿨다는 보도가 나왔다. 하루 1만 통씩 걸려오는 1339 콜센터는 대응 인력이 30명에 불과해 먹통이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그마나 있던 시민의식도 사라진다. 정부는 ‘청와대가 컨트롤 타워’라는 말만 앞세우지 말고 전문성을 갖춘 질병관리본부를 중심으로 체계적이고 일관된 대응을 통해 국민 신뢰부터 쌓아야 한다. 이번 사태가 우리의 국격을 검증받는 시험무대임을 정부와 국민 모두 되새겨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