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계의 새 물결] 6. '오리엔탈리즘'과 그 이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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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가 떠났다. 그러나 경계를 초월하고 사고(思考)와 분석의 장기적 결과를 기대하던 그의 정신은 죽음의 물리적 경계를 넘어서 오랫동안 이 세상에 남아있으리라. 2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된 '오리엔탈리즘', 1978년 출간된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도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의 저서도 그가 제기한 주제들과 함께 한동안 유효할 것이다.

사이드가 널리 알린 오리엔탈리즘은 본래 18~19세기에 산스크리트.아랍어.페르시아어 등 동양의 언어와 문학을 연구하는 동양학 학자(orientalist)의 연구업적을 지칭했다. 20세기 후반 동양을 다루기 위해 기획된 체제, 이슬람에 대한 편견, 동양과 서양 간의 이분법적 사고방식, 유색인과 여성에 대한 정복을 정당화하는 이념이라는 뜻이 여기에 포함되었다.

새로운 의미로 오리엔탈리즘을 언급한 학자들은 바로 그 이유로 오리엔탈리즘을 비판했다. 대표적 인물이 에드워드 사이드다. 그에게 "오리엔탈리즘은 동양과 서양 간의 인식론적 구분을 창조하고 확인하는 데 기여한, 서양의 동양에 대한 연구와 서양에 의해 재현되고 지지된 이념적 관점"이다. 요약하면, 서양이 가진 동양의 본질적 이미지와 서양이 왜곡한 동양이다.

동양을 지배한 서양은 자신의 우월성을 돋보이게 하면서 동양을 열등한 타자(他者)로 정의했다. 그리하여 서양이 우수하면 동양은 열등하고, 동양이 후진적.비합리적이면 서양은 진보적.합리적이다. 동양이 나약한 여성과 아동이라면 서양은 그들을 후원하는 강한 남성이자 어른인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을 불완전하게 보며 그 기준으로 완벽한 서양을 전제한다. 서양을 가치의 중심에 두고 서양의 것을 보편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동양의 부정적인 이미지는 영화.TV.사진.그림.광고.문학.학술서적.신문과 잡지 등을 매개로 오늘날에도 반복해 재현되고 당연시된다.

그러나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비판은 많지만 그 전복의 방법은 뚜렷하지 않다. 억압과 부당함에 대한 저항을 고무한 사이드도 동양과 서양을 고정불변의 동질적 세계로 여기고, 오리엔탈리즘에 저항하는 동양을 상정하진 않는다. 그저 식민주의가 종결되면 동양이 진정한 자아를 회복할 것이라고 전망할 뿐이다. 사실 주술사가 악마를 쫓아내듯 동양에서 서양을 쫓아내기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은 서양이 누리는 절대적인 지적 권위와 지배적 위치를 탈중심하고 동양의 상대적 진리를 응시하는, 곧 차별적 시선을 넘어서 양측의 동질성에 주목하는 다양한 연구와 활동을 태동했다.

특히 계몽주의와 식민주의 간의 연계와 오리엔탈리즘이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었음을 밝힌 그의 비판은 포스트콜로니얼(탈식민주의)연구의 이론적 기반을 제시했다. 동시에 동양에 대한 연구 뿐 아니라 서지학.민족학.정치학.미술.문학 등 분야에서 학문의 연구방향도 바꾸었다.

바바와 스피박 등의 문학비평과 영국에서 포스트콜로니얼 문학연구가 등장한 이후 문화텍스트의 탐구와 분석이 오리엔탈리즘과 식민담론의 합법적 영역이 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역사.문학.사회학.인류학에서 지식이 생산되는 양태와 학문의 정치성에 대한 근본적 재평가가 이뤄진 것도 이 무렵이다. 인종.식민지.제국.국가 등이 학자들의 주요 관심사로 떠올랐다.

'오리엔탈리즘'이 서구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억압받는 존재- 이슬람과 아랍, 다른 제3세계(동양)-를 방어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사이드의 주장은 역동적인 인간의 현실과 역사 경험을 본질주의 시각에서 해방하는 연구에 반영됐다.

그리고 동양인(아프리카와 인도인 등 비서구인은 모두 동양인으로 간주하는 것이 오리엔탈리즘이기도 하다)의 활발한 연구 활동, 하층민의 경험을 담은 서벌턴 역사의 분석, 그리고 페미니스트 등 마이너리티의 담론에도 반영됐다.

포스트콜로니얼 인류학.정치학.미술사.문학비평도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이 차이를 만들어 낸 분야다. 체제와 전체화에 대한 반대, 다원성과 다양성으로의 중심 이동, 소외된 주변과 소수 약자의 삶을 새롭게 조명하는 움직임이 두드러진 이러한 연구 경향은, 세상에 고립된 인간은 없으며 역사는 남성과 여성, 종과 주인, 동양과 서양이 함께 만든다는 보다 넓은 범주의 사이드의 세계 인식과 궤를 같이 한다.

유럽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 다문화주의, 부당함과 고통에 대한 언급, 국민국가와 민족주의의 탈신비화, 반근본주의적 역사서술, 제3세계와 탈식민화한 국가에 관한 연구, 문화와 과학에 대한 아시아 고유의 접근방식도 사이드의 영향을 받은 연구 경향이며, 나아가 동양의 서구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보복 프로그램인 옥시덴탈리즘 곧 '동양이 상상하는 서양'의 등장도 사이드 이후의 연구 결과다.

이옥순 <연세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

◇약력=▶인도 델리대에서 인도 근대사 전공 석.박사. ▶인도 유학 당시 에드워드 사이드의 영향을 받아 기존의 역사와 문학 등을 새롭게 해석하는 분위기 체험. ▶ 저서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 '인도에는 카레가 없다' '여성적인 동양이 남성적인 서양을 만났을 때' 등.

<사진설명전문>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의 한 장면. 1871년에 초연된 이 유명한 오페라도 동양(이집트)을 서양이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이국적이고 먼 구시대의 공간으로 그렸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문화와 제국주의'에서 '아이다'가 비유럽세계에 대한 서구 제국의 관념과 유럽 중심의 동양관을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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