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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이 정치를 한다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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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문영호 변호사

문영호 변호사

“검찰이 수사로 정치를 하고 있다.” “그냥 두지 않겠다.” 여권에서 나온 검찰 비난이다. 최근 청와대 압수 수색 등 권력을 상대로 한 거침없는 수사 행보에 위협을 느꼈기 때문인지, 수사권 남용 운운하며 제동을 건 거다. 그들의 비난에는 섬뜩한 적의(敵意)가 번득인다. 수사권 조정 등의 개혁을 무산시키려고 야당과 결탁해 강공(強攻)으로 나온다는 거다. 말 못할 섭섭함도 깔려있는 것 같다. 내 편인 줄 알고 반대를 뿌리치고 발탁한 “우리 윤 총장님”이 이럴 수 있느냐는 거다.

검찰 과잉 부추기더니 매질나서 #법·원칙대로 진실만 따라가라 #쌓이면 새로 쓴 검찰 역사 될 것

정치인이 연루된 비리나 정치권에 미치는 영향이 큰 사건을 묶어 ‘정치적 사건’이라 한다면, 그건 주로 검찰 몫이었다.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못한다고 욕을 먹으면서도 그 일을 감당해 온 게 검찰이다. 권력의 시녀라고 매도하는 사람조차도 일이 터지면 검찰의 등판을 요구했다. 지난날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전직 대통령의 뇌물수수, 현직 대통령 아들의 비리 수사, 그리고 불법 대선자금 수사 등을 비롯한 정치적 사건들의 착수과정을 뜯어보라. 그중에는 검찰이 스스로 나선 것도 있지만, 들끓는 여론을 잠재워 국정을 신속히 안정시켜야 한다는 명분 때문에 마지못해 나선 경우가 더 많았다. 기업수사 도중 포착된 비자금을 추급해 가다 정치자금 꼬리가 잡힌 경우도 있었다.

정치적 사건 부담이 비정상적으로 급증한 건 2017년 이 정부 출범 이후다. 2년 넘게 수사가 계속되다 보니, 검찰 관련 보도가 TV 저녁 뉴스를 뒤덮는 날이 이어지고 있다. 누가 봐도 ‘검찰 과잉’이다. 그런데 검찰 과잉이 당장 끝날 것 같지도 않다. 묻혀 넘어가던 일까지 까발려지기 때문이다. 전 정부 적폐청산에 동원된 촘촘한 그물이, 이 정부 권력 핵심부의 은밀한 업무상 비위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의사당 내 여야 간 충돌도 검찰에 떠넘기겠다며 정치권이 고발에 안달이 나 있다.

정치적 사건을 주무르며 단물을 빨아먹은 게 검찰이다. 권한을 키우고 권력을 누렸으니까. 하지만 그게 독(毒)이었다. 정치권에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가 압수 수색, 신병구속 등 발걸음을 뗄 때마다 불똥이 튈 것 같으면 ‘수사로 정치한다’고 몰아세웠다. 그런 속성은 정치적 파장이 큰 사건일수록 더 심했다. 정치적 사건 수사를 숙명으로 받아들이면서 검찰 나름으로 살아날 길이라고 찾아낸 선택이 수사 회피였다. 그러면서도 권력의 눈치를 보는 걸로 오해받지 않으려고, 사법적 처리 대상이 아니라거나 정치권 내에서 자율적으로 해결할 문제라는 등의 명분을 내세웠다.

회피 사례 중에 훗날 잘한 일로 평가받은 건, 1997년 12월 대선을 두 달 앞두고 터진 김대중 후보 비자금 조성 의혹 폭로다. 당시 검찰총장이 내린 수사유보 결정은 수사 포기 선언이었다. 여론조사 지지도 우위를 묵살하고 수사했더라면 그게 바로 수사로 정치를 한 경우 아닐까. 틀림없이 대선 판세가 크게 요동쳤을 거다.

그렇다고 마냥 회피하며 물러설 순 없다. 권력감시라는 본연의 임무를 방기할 수 없지 않은가. 그동안 권력 주변 실세의 비리를 때때로 단죄하기도 했지만, 살아있는 권력에 전면적으로 칼을 겨눈 적은 없었다. 조국 사태로 시작된 수사가 이렇게 커질 줄 누가 알았을까. 갈수록 또 다른 의혹이 불거지더니, 마침내 헌법 가치를 훼손하는 권력의 선거개입 의혹으로 번졌다.

모처럼 검찰이 큰 박수를 받고 있다. 살아있는 권력에 맞서는 검찰의 ‘참모습’을 애타게 기다렸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뿌리 깊은 반감에 검찰 과잉의 피로감이 겹쳤기 때문인지, 검찰의 힘을 빼라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공수처 설치 등을 여당이 밀어붙인 것도 믿는 구석이 있어서다.

앞날을 예측하기 어렵지만, 진실을 쥔 쪽이 이길 수밖에 없다. 진실을 덮으려는 쪽에서 아무리 발버둥쳐도 덮을 수 없는 게 진실이다. 수사방해나 음해를 극복하는 길은 오직 하나다. 법과 원칙에 의지해 진실만을 따라가라. 뒤엉킨 사실관계에서 정치적 색채가 있는 군살을 낱낱이 걷어내, 정치적 사건을 형사 사건화시켜라. 빈틈없는 증거의 토대 위에 세운 공소사실로 재판에서 당당하게 승부하라. 인사이동으로 팀 구성이 바뀐 게 변명이 될 수 없다. 반드시 유죄를 받아내, 포착된 진실이 누구도 흔들 수 없는 진실임을 입증해 보여라.

“나쁜 놈 잡고 범죄를 따라갈 뿐”이라는 윤 총장의 소신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으랴. 검찰 과잉을 부추기며 적폐청산 쪽으로 몰고 가던 사람들이 갑자기 매질에 나선 형국이지만, 말머리를 돌리기엔 너무 나가버렸다. 모진 매를 맞으면서도 진실에 다가가려고 몸부림친 것, 그게 쌓이면 새로 쓴 검찰 역사가 되리라.

문영호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