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17대 갖고 '007식 도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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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17대, 수표.미화 등 1000여만원, 검은색 오피러스 승용차, 작은 전화번호 수첩 한 권.

지난달 19일 검찰의 소환 통보를 받고 38일 동안 잠적했던 제이유 그룹 주수도(50.사진) 회장이 26일 검거될 때 갖고 있던 물품들이다. 검찰 조사 결과 주 회장은 '007작전'을 방불케 하는 치밀한 계획을 세워 도피행각을 벌였다. 주 회장이 타고 있던 오피러스 승용차에서 휴대전화가 17대나 발견됐다. 휴대전화 개설자 명의는 모두 달랐다. 그는 수사당국의 발신자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휴대전화를 몇 통화 사용한 뒤 바로 폐기해 버렸다고 한다. 주 회장이 이미 쓰고 버린 휴대전화가 상당수일 것으로 검찰은 추정하고 있다.

오피러스 승용차는 주 회장이 검거되기 이틀 전 회장 비서실에 몰래 연락을 취해 서울 역삼동의 한 골목길에 차를 세워놓도록 한 뒤 밤중에 혼자 가서 몰고 온 것이다. 은신처는 그룹 관계자인 조모씨가 소유하고 있는 경기도 이천시의 한 전원주택이었다. 이 집에서 조씨 가족과 함께 살면서도 수시로 전국 각지의 호텔을 전전하며 거처를 옮겼다. 지방으로 이동할 때는 휴게소에 들르면 위험하다고 판단, 항상 갓길에 차를 세우고 '볼일'을 봤다는 것이다.

검찰은 주 회장의 승용차 번호를 입수, 이천시 마장면 일대에 잠복하다 마을을 빠져나가던 주 회장을 검거했다. 주 회장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는 상황에서 조사를 받을 수 없어 잠적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27일 사기.횡령 등의 혐의로 주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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