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 서울, 꿈나무 키워 우승 따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7면

'꼬마'들이 자라 '전사'가 되는 데는 4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프로축구 FC 서울의 '유망주 육성 프로그램'이 마침내 결실을 보고 있다.

서울이 2006 하우젠컵에서 우승하기까지 한동원(20).김동석(19).고명진(18) 등 '주니어'들이 큰 역할을 했다. 중학교 졸업 무렵에 입단한 이들은 꾸준히 2군 경기에 출전하며 기량을 키웠고, 박주영.김동진.백지훈 등 월드컵 대표들이 빠진 틈을 타 팀의 주력으로 자리 잡았다.

1999년 조광래 전 감독이 부임하면서 서울(당시 안양 LG)은 유소년 유망주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고졸 유망주가 대학에 진학하는 게 당연시되던 시절에 안양은 최태욱.박용호(이상 부평고), 김동진(안양공고), 최원권(동북고) 등 고교 에이스들을 곧바로 영입했다. 이들은 팀의 주축으로 성장했지만 고교 시절까지 몸에 밴 습관을 고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조 감독과 박병주 기술고문(스카우트)은 "현대 축구에서 요구하는 세밀한 기술을 익히는 데는 고졸도 늦다. 중학생들을 스카우트해 장기적인 목표를 갖고 키우자"고 뜻을 모았다. 그래서 뽑아온 선수들이 한동원.고명진.김동석.안상현 등이었다. 중학교에 다니던 선수를 프로에서 뽑아가자 "군 면제를 받게 하기 위한 것 아니냐" "중등과정도 마치지 않고 사회에 나가서 뭘 할 수 있겠느냐"는 비난과 걱정도 많았다. 하지만 구단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들에게 체력 훈련의 부담을 줄여 주면서 세밀한 기술을 익히도록 했다. 또 저녁에는 컴퓨터학원에 의무적으로 다니게 하고, 강사를 초빙해 영어 회화 공부를 시키기도 했다.

이들은 스펀지처럼 배운 것을 쏙쏙 빨아들였고, 기량도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다. 2군 리그에서는 자신들보다 10년 이상 선배들을 상대로 얄미울 정도로 빼어난 플레이를 했다. 한동원은 지난해 2군 리그 득점왕에 올랐고, 호리호리한 몸매의 고명진은 수비 두세 명을 손쉽게 제쳤다. 야구 선수 출신인 김동석은 40m를 날아가는 빨랫줄 같은 스로인으로 수비를 위협했다. LG의 훈련장인 구리 챔피언스파크에서 2군 경기가 열릴 때마다 조 감독과 박 고문은 "우리 꼬마들 크는 것 보는 낙에 산다니까"라며 흐뭇한 웃음을 짓곤 했다.

조 감독과 박 고문은 팀을 떠났지만 서울은 '유소년 육성'의 큰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이들이 뿌린 씨앗은 하우젠컵 우승이라는 첫 열매로 나타났다. 앞으로 얼마나 큰 선수가 더 나타날지 모른다. 조광래 전 감독은 "당장 성적에 연연하기보다 장래를 보고 유소년 선수를 육성하는 것이 끝내 성공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 같아 흐뭇하다"고 말했다.

이장수 감독은 "후기리그에도 경쟁을 통해 살아남는 선수를 기용하겠다"며 주전 경쟁을 부추겼다. 여기에는 '천재 스트라이커' 박주영(21)도 예외일 수 없다.

정영재.강인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