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상품권보다 좋더라" 포항상품권 이번에도 400억 완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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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포항의 한 은행 창구 앞. 시민들이 상품권 구입을 위해 기다리고 있다. [사진 포항시]

지난 13일 포항의 한 은행 창구 앞. 시민들이 상품권 구입을 위해 기다리고 있다. [사진 포항시]

지난 13일 경북 포항시 남구 상대동 대구은행 포항영업부. 수십 명의 시민이 은행 창구 앞에 북적였다. ‘포항사랑상품권(이하 포항상품권)’을 구매하기 위한 사람들이었다. 2020년 새해 첫 포항상품권 특별 판매분이 완판됐다. 은행 앞에 긴 줄을 만들며 6일 만에 400억 원어치가 팔려나갔다.

13일부터 6일만에 400억원어치 팔려 #동네 문방구까지 가맹점으로 흡수해 #"많은 세금 투입은 개선해야 할 문제" #"할인보다 포인트 지급 형태로 바꿔야"

포항상품권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조례를 만들어 발행하는 자체 상품권이다. 현금 역외 유출 방지를 위해 경남 거제 등 전국 50여개 지자체가 비슷한 자체 상품권을 발행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 안에서만 쓸 수 있는 자체 상품권을 사려고 포항처럼 긴 줄을 서는 경우는 보기 어렵다. 포항상품권은 지난해 1700억 원어치를 발행해 완판했다. 17년엔 1300억 원어치, 18년엔 1000억 원어치를 발행해 모두 팔았다.

포항시 관계자는 23일 "설을 앞두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상품권 가액에 8%를 할인해 새해 첫 판매분 400억원치를 발행, 150여곳의 시중은행을 통해 판매를 시작했는데, 토·일을 제외하고 6일만인 20일 오전 모두 팔려나갔다"고 밝혔다. 그는 "8% 할인을 중단하고, 21일부터 다시 5% 할인으로 상품권을 판매했는데, 하루 5억원어치씩 여전히 판매가 이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포항시는 오는 12월까지 1600억원어치의 상품권을 더 판매할 방침이다.

경북 포항시가 지역경제활성화를 위해 발행한 포항사랑상품권.[뉴스1]

경북 포항시가 지역경제활성화를 위해 발행한 포항사랑상품권.[뉴스1]

잘 팔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포항상품권에는 성공 공식이 있다. 우선 많은 가맹점이다. 포항의 전체 상점은 2만 5000곳 정도. 이 중 1만3000여곳이 포항상품권 가맹점이다. 시민 권모(32·여)씨는 “죽도시장에서 건어물을 사고, 동네 문방구에서 연필을 살 때도 포항상품권을 현금처럼 쓸 수 있다. 헬스장도 끊을 수 있다”며 “물건값의 70% 이상만 치르면, 남은 30%에 해당하는 금액만큼은 현금으로 거스름돈을 받을 수 있어 백화점 상품권보다 더 좋은 것 같다고도 한다”고 했다.

최대 10%라는 높은 할인 판매도 완판 이유다. 1만원권·5000원권 두 가지로 발행하는 포항상품권은 상시 5% 할인해 판매한다. 그러다 1월이나 6월·7월·9월·12월 등 포항시가 정한 특별한 때엔 8% 할인, 최대 10%까지 할인해 판매한다. 1만 원짜리 상품권을 9000원에 구매할 수 있다는 의미다.

잘 팔리지만, 개선이 필요한 문제점도 있다. 이른바 '상품권 깡'. 가맹점 업주가 직접 또는 지인을 시켜 할인 상품권을 구매한 뒤 그걸 은행에 가져가 다시 현금으로 환전하면, 그 할인율만큼 이익금을 챙길 수 있는 문제다.

이에 대해 포항시 한 간부는 "문제가 있는 부분이 맞다. 그런 사례도 있다고 본다. 그래서 시는 현금으로 환전해가는 가맹점 점주가 상품권을 얼마나 가져와 어느 기간에 현금으로 바꿔 가는지를 매일 파일로 은행에서 받아 살핀다. 그러다 환전 금액이 일정하거나, 다소 많은 가맹점은 별도로 조사해 점주가 현금으로 바꿔 갈 수 있는 환전 금액을 월 3000만원에서 1000만원 이하로 낮추는 식의 페널티를 준다"고 했다.

상품권 사려고 줄 선 포항시민[연합뉴스]

상품권 사려고 줄 선 포항시민[연합뉴스]

할인 판매로 만든 ‘완판 상품권’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중화 제주연구원 박사는 “지역 상품권을 할인 판매하는 게 정상적인 것이라고만 볼 순 없다. 할인 판매보다 포인트 혜택 같은 것을 앞세워 지역 내에서 빠르게 상품권이 회전하도록 하는 게 맞다”고 했다. 그는 “하지만 포인트 만으론 회전이 제대로 안 되다 보니, 할인 판매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장기적으론 할인 방식의 상품권 판매는 개선이 필요한 부분 같다”고 덧붙였다.

포항시는 올해 국비 80억원, 시비 80억원 등 모두 184억원을 포항상품권 관련 예산으로 정했다. 지난해에도 시비 75억원 등 150억원 정도를 상품권 예산으로 썼다. 이 돈으로 상품권을 인쇄하고, 시중 은행에 판매 수수료(0.8%), 환전 수수료(0.9%)를 지급한다. 시민에게 팔려나간 상품권 할인 금액만큼을 보전한다.

가맹점 업주들은 상품권을 받아 물건을 판매한 뒤 은행에서 현금으로 환전할 때 별도 수수료를 부담하지 않는다. 즉, 할인 상품권이 많이 팔려나가 은행에 되돌아올수록 그만큼 세금이 들어가는 구조인 셈이다.

이에 대해 손창호 포항시 포항상품권 담당은 “세금이 들어가는 할인 판매를 하는 건 맞지만, 지역 경제 활성화, 현금 역외 유출 방지라는 지역 상품권 발행 기능은 100% 충족되고 있다”고 했다.

포항=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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