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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지키는 마음이 또 다른 유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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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율곡고 역사동아리 ‘예터밟기’ 회원들이 각종 청소도구를 들고 ‘용미리 석불입상’ 앞에 모였다. 높이 17m의 석불입상은 고려시대의 불상 양식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문화재청 제공]

26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율곡고등학교 3층 역사사랑방에 학생 10여 명이 모였다. 율곡고 '예터밟기' 회원들이다. 역사교사 구종형(44) 선생님의 주도로 올 여름방학의 활동 계획을 짰다. 예터밟기는 '옛터'(유적)과 '밟기'(답사)의 합성어다. 우리 문화재 현장을 찾아가 역사를 공부한다는 뜻이다.

이날 1학년 신입회원 두 명이 선배들에게 인사를 했다. 회원들은 격주로 금요일 오후마다 학교에서 차로 30분가량 떨어진 '파주 용미리 석불입상'(보물 93호)을 찾아간다. 화강암 천연암석을 깎아 만든 두 개의 석불입상(石佛立像)은 높이 17m의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학생들은 입상 주변을 청소하고, 문화재 관련 지식도 쌓아간다. 고향에 대한 사랑이 깊어진 것은 물론이다.

예터밟기는 2004년 12월 구성됐다. 구종형 교사는 "아이들에게 18년간 역사를 가르쳐왔는데 막상 우리가 살고 있는 고장에 대해선 무관심했다. 그해 문화재청에서 '1문화재 1지킴이 운동'을 시작해 역사에 관심이 있는 학생을 중심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간 학생들은 석불입상과 사계절을 함께했다. 봄.여름에는 불상 주변의 이끼와 잡초를 제거하고, 가을에는 낙엽을 쓸고, 겨울에는 눈과 얼음을 치웠다. 기본은 역시 청소. 또 불상의 상태를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불상 주변의 환경도 정비했다. 불상이 있는 용암사의 버스정류장 이름을 바로잡고, 불상 안내판을 새로 단장했다.

처음 7명이었던 회원 수도 현재 18명으로 불어났다. 여름에는 모기떼와 한바탕 전쟁을 벌였고, 가을에는 낙엽 치우는 냄새를 맡으며 한껏 시심(詩心)에 빠지기도 했다. 대입을 앞둔 고3 학생도 정기활동에 빠지지 않는 열정을 보일 정도다. 그들의 지난 활동은 문화재청 홈페이지 열린마당(open.cha.go.kr)에 자세하게 실려있다.

학생들은 매주 월요일 발표모임도 갖는다. 지난 일정을 정리한 보고서를 쓰고, 각자 활동한 내용을 발표한다. 2학년을 대표하는 이지원(16)군은 "평소 공부.시험으로 쌓인 스트레스를 문화재 사랑으로 푼다"며 "불상을 하나하나 알아가고, 발표.작문실력을 쌓아가면서 자신감도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예터밟기는 지난달 '으뜸 문화재 대축제'에도 동참했다. 지역문화재 보호활동을 블로그에 올리는 행사다. 문화재청.히스토리채널이 공동주최하고, 교육부.문화관광부.중앙일보.조인스닷콤이 후원한다.

구종형 교사는 "지난주 불상과 예터밟기를 알리는 책받침 1만장을 제작해 파주 유관기관에 배포하고, 2학기에는 학생들이 직접 창작한 플래시 애니메이션도 선보일 계획"이라며 "문화재를 지키는 정신이야말로 문화재만큼 소중하고, 또 후손에게 물려줄 또 하나의 유산이다"고 밝혔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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