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전문가’ 허삼영 삼성 감독 “야구는 사람이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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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삼성 라이온즈 역사상 가장 약한 전력을 맡았다는 평가를 받는 허삼영 감독. [사진 삼성 라이온즈]

삼성 라이온즈 역사상 가장 약한 전력을 맡았다는 평가를 받는 허삼영 감독. [사진 삼성 라이온즈]

‘허삼영 모르는 사람 추천 눌러봅시다’.

코치 경험조차 없는 무명투수 출신 #“공정하게 선수 대해 신뢰 얻을 것”

지난해 9월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가 허삼영(48) 감독을 선임했다는 포털사이트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465개의 ‘좋아요(모른다)’가 달렸고, ‘싫어요(안다)’는 7개였다. 그가 삼성의 전력분석팀장이라는 걸 야구인들은 알았지만, 팬들에겐 그만큼 낯선 인물이었다. 3개월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무명’인 허 감독을 21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만났다.

삼성은 KIA 타이거즈(11회) 다음으로 많은 우승(8회)을 기록한 명문 구단이다. 한국시리즈 최다 진출(16회), 정규시즌 역대 최다승(2580승 103무 2088패)도 삼성의 몫이다. 옛날 이야기다. 그러나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연속 포스트시즌(9위-9위-6위-8위)에 진출하지 못했다.

삼성 전력이 1982년 창단 후 가장 약할 때 허 감독이 선임됐다. 그는 “축하를 많이 받았다. 그러나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은 걱정을 더 많이 해줬다. ‘(안정된 길을 포기했으니) 미친 거 아니냐’는 말도 들었다”며 웃었다. 그는 "지금도 새벽에 일어나면 어떻게 팀을 만들어가야 할지, 선수들 의식을 바꿔야 할지. 이기는 습관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고민한다. 우선 나부터 바뀌어야 코치, 선수들도 바뀌니까"라고 했다.

허 감독은 코치 경험이 없다. “내가 감독이 될 거라는 생각은 1도(조금도) 하지 않았다”는 그는 “구단 직원으로 23년을 일했으니 눈치가 없겠는가. (구단이 감독 제안을 했을 때는) 다 정해진 일이라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허 감독은 “삼성 직원으로 일하면서 업무적으로 인정을 받았다. 넉넉하진 않았어도 가족들을 부양했다. 그렇게 해준 구단이 감독을 맡아달라고 요청하자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물론 (삼성 감독이 됐다는) 자부심도 있다”고 설명했다.

선수 시절 그는 1군 무대에서 1승도 올리지 못한 무명 투수였다. [사진 삼성 라이온즈]

선수 시절 그는 1군 무대에서 1승도 올리지 못한 무명 투수였다. [사진 삼성 라이온즈]

그는 유망한 투수였다. 대구상고(현 상원고) 3학년이었던 1990년 대붕기 대회 우승을 이끌고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다. 이듬해 고졸우선 지명을 받아 삼성에 입단했다. 하지만 꽃을 피우진 못했다. 그는 김성근 감독 체제에서 집중 훈련을 받았다. 허 감독은 "'김성근의 아이들'이라고 불릴 만큼 많이 배웠다. 하지만 내가 준비가 덜 돼 있었다. '10을 알려주면 5도 소화하지 못했다'. 허리 통증도 심해졌다"고 떠올렸다. 허리 디스크 통증으로 5년 만에 은퇴한 그는 “부상이 있는 데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했다”고 했다. 통산 성적은 1군 4경기에 평균자책점 15.43.

구단은 그에게 은퇴와 함께 프런트 입사를 권했다. 허 감독은 "24살에 결혼했다. 부모님이 안 계셔서 결혼을 빨리 했고, 가족이 있으니 구단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했다. 그는 "내가 1군에서 성공하지 못할 거란 걸 알았다. 2군에선 (평균자책점 1위를 할만큼) 그럭저럭 던졌지만 요령 덕북니었다. 1군에선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1996년 삼성의 훈련지원 요원이 된 그는 전력분석 파트를 맡았다. 커다란 카메라들 들고 다니며 영상을 찍고, 경기장에서 차트를 만든 뒤 숙소로 돌아와 전산 입력을 마치면 하루가 다 갔다. 허 감독은 “그때 일했던 친구들이 모두 그만뒀다”며 웃었다. 성실성과 분석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2003년 정직원이 됐다. 그가 전력분석팀을 체계화한 뒤 삼성은 6번이나 우승했다.

허 감독이 야구를 파악하고 분석하는 도구는 역시 데이터다. 허 감독은 “우리가 지난해 홈런 2위(122개)였다. 그러나 장타력이 높다고 볼 순 없다”며 “(홈런이 잘 나오는) 라이온즈파크와 제2구장 포항에서 76개를 쳤고, 원정 경기에선 46개에 그쳤다”며 “평균의 함정에 속아선 안 된다. 시즌 초 롯데 마운드가 흔들릴 때 몰아친 홈런이 많았다. 서울 고척돔에서는 2개에 그쳤다”고 설명했다. 그는 “무사 2루에서 3루로 보내는 팀 배팅은 10개 구단 중 꼴찌였다. 좋은 타격을 할 수 있는 초구나 2구에선 공격적인 스윙이 중요하지만 2스트라이크 이후에는 타율이 낮아진다. 그럴 땐 팀 배팅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데이터전문가로 성장해서 감독까지 됐지만 그의 시선은 사람을 놓치지 않는다.  허 감독은 “현역 시절 이승엽은 남들보다 일찍 야구장에 출근해서 자료를 공부했다. 덕분에 홈런을 많이 칠 수 있었다”고 떠올렸다. 2020년 허 감독의 야구가 단순히 ‘데이터 게임’에 그치지는 않으리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허 감독은 “나는 데이터를 좋아한다. 확률만큼 정확한 기준이 없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데이터가 필요한 선수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감독이 선수들을 공정하게 대하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선수들로부터 믿음을 얻는 것”이라고 말했다. 허 감독은 “야구는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한 것도 '사람'이었다.

대구=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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