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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결의 1695호와 6자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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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를 규탄하고 6자회담 복귀를 촉구하는 유엔안보리 결의안 1695호가 15개 이사국의 만장일치로 15일 채택됐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G8(주요 8개국) 정상회담이 열리고 있을 때였다. "미사일 발사는 주권국가의 고유 권한"이라는 북한의 주장을 국제사회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동안 제재를 반대해 왔던 중국과 러시아도 대북 군사 개입의 길을 열어 놓을 수 있는 '유엔헌장 7장에 따라'라는 구절이 삭제된 결의안에는 찬성했다. 이로써 북.미 간의 줄다리기는 새로운 양상으로 접어들게 됐다.

유엔 결의문은 미사일과 미사일 관련 물품.재료.제품.기술이 북한의 미사일이나 대량살상무기(WMD) 프로그램에 사용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모든 유엔 회원국은 이를 준수해야 한다.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의 핵심 전략은 북한을 봉쇄하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준비 징후가 포착되자 일본.중국.러시아 등과 연대해 "발사를 강행하면 국제사회의 대응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북한에 사전 경고했다.

미국은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고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또 한국과 중국에는 북한의 화폐 위조, 미사일 발사, 인권 탄압, 핵 확산 문제와 관련해 국제사회와 협력할 건지 아니면 북한과 보조를 맞출 것인지를 선택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북한은 미사일 시험 발사와 관련한 강대국 간의 틈새를 활용하고자 했다. 시험 발사로 인해 미국과 중국, 미국과 한국, 한국과 일본 사이에 균열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보리에서 결의안이 신속하게 채택된 것은 북한의 이러한 의도가 실패로 돌아갔음을 보여 준다.

한국은 예외일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미사일 시험 발사를 한 북한에는 장기간 침묵하면서도 강력한 북한 제재를 추진하고 있던 일본에는 거친 반응을 보여 실망을 자아냈다. 북한의 행동은 햇볕정책을 지속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한국은 대북 인도주의적 지원뿐 아니라 송금도 중단하라는 압력을 받게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오히려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는 것이 미국 주도의 연합전선을 깨는 가장 좋은 선택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이 상당히 완화될 것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언제나 이러한 선택을 할 수 있다.

북한이 남북장관급회담에서 자신들이 제공하는 '미사일 우산' 덕분에 남한의 안보가 튼튼해졌다고 주장한 것은 한국의 여론을 오판한 데서 나온 결과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문제를 극단적 상황으로 몰고가는 가운데서도 한국.중국.러시아는 물론 일본마저 미국이 6자회담의 틀 안에서 북한과 협상하기를 희망해 왔다.

이런 중차대한 시점에 미국은 북한과 주고받는(give and take) 협상을 선택하는 대신 직접 접촉을 피해 왔다. 미국은 당분간 북.미 양자협상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단순히 6자회담에 복귀하는 것만으로는 전략적인 결정을 내릴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6자회담이 다시 한번 결렬되면 긴장은 더욱 고조되고 충돌을 피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유엔 결의는 국제사회가 북한의 도발을 참아낼 수 있는 인내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북한이 지구촌 분쟁지역에 추가되기를 바라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북한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다면 한국은 북한 문제 해결에서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스콧 스나이더 아시아재단 선임연구원

정리=한경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