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테마가있는이야기마을] 4층 귀신의 정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1면

그래서였을까. 우리는 야간자율학습(야자) 시간에 삼삼오오 모여앉아 다음 시험 성적이 오를 것인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을지 등 손에 손을 잡고 볼펜을 돌리면서 귀신을 불러 물어보곤 했다. 귀신은 무서웠지만 귀신보다 더 무서운 것이 공부와 대학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지나가던 초여름,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하는 장마철의 눅눅함처럼 교내에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거꾸로 매달린 여자 귀신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야자를 끝내고 집에 가던 3반 누가 봤더라는 둥 고3 교실이 있는 4층에 나타난다는 등의 이야기가 퍼졌다. 아이들 모두 그 소문에 대해 떠드느라 난리였다.

그러던 어느날, 바야흐로 장마철이라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부모님께 데리러 와 달라고 구조요청을 해야 할 정도였다. 학교 도서실에 있다 책가방을 싸기 위해 혼자 교실로 돌아갔다. 자꾸만 거꾸로 매달린 여자귀신 이야기가 생각났다. 마침 귀신이 나타난다는 곳이 고3교실이 있는 4층 아닌가. 찜찜한 느낌에 계속 흘끔흘끔 주변을 돌아보며 가던 중 화장실 옆 7반에서 이상한 것을 봤다. 복도 창문 너머 운동장쪽 창문에 어렴풋이 비오는 하늘을 배경으로 보이는 그것은… 거꾸로 매달린 여자의 얼굴이었다.

사람이 너무 놀라면 비명도 못 지른다고 했던가. 그 말이 진짜였던 것 같다. 뭐라고 할 말이 없어 멍하게 그 여자를 바라보고 있는데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불 꺼진 창에서 불쑥 친구의 얼굴이 튀어나왔을 때는 귀신을 처음 봤을 때보다 더 놀랐다. 어안이 벙벙해져 있는 내 얼굴을 보고 친구는 배를 잡고 뒹굴었다.

한참을 웃는 친구를 보자 무슨 일인지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웃느라 배가 아파 입도 못 여는 친구를 두고 빈 교실에 들어가 불을 켜자 귀신의 정체가 드러났다. 그건 바로 잡지책에 난 모 그룹 여자가수 사진이었던 것이다. 어두운 창 밖에 얼굴만 크게 나온 사진을 거꾸로 붙여 귀신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귀신이라는 것이 이미 아는 애들은 다 아는, 친구를 불러놓고 귀신이 나타났다고 놀리는 장난이었던 것이다. 보기 좋게 나를 속여 넘기고 미친 듯 웃으며 도망가는 친구를 향해 복수를 외치며 4층에서 1층까지 뛰어내려오는 중에도 비는 계속 퍼붓고 있었다.

홍연주(23.학생.고양시 주엽동)

*** 8월 18일자 주제는 '풋사랑' 입니다

분량은 1400자 안팎. 성명과 주소.전화번호.직업을 적어 8월 14일까지로 보내주십시오.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원고료를 드리며, 매달 장원도 선정해 LG 싸이언 휴대전화기도 드립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