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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자신감? “자동차 경쟁력 2년 전에 한국 추월했다”

중앙일보

입력

볼보·메르세데스-벤츠·로터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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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15일 이 회사들을 함께 언급했다. 공통점은 뭘까. 중국 자동차 업체 지리(吉利)가 인수 또는 지분을 사들인 유럽 자동차 회사다. 볼보는 스웨덴, 벤츠는 독일이다. 로터스는 영국 스포츠카 제조업체다.

중국의 한 자동차 전시장에 등장한 볼보 S90. 한국에서 팔리는 S90은 모두 중국 다칭(大慶)에서 생산된다. [사진 마이처닷컴]

중국의 한 자동차 전시장에 등장한 볼보 S90. 한국에서 팔리는 S90은 모두 중국 다칭(大慶)에서 생산된다. [사진 마이처닷컴]

지리는 2010년 볼보를 인수했다. 현재 볼보의 일부 생산라인을 중국으로 옮겨 중국에서 볼보 자동차를 만들고 있다. 지리는 2018년엔 메르세데스-벤츠 지분 9.7%를 매입해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로터스도 2017년에 인수했다.

FT는 지리가 최근에는 영국 럭셔리카 제조업체 애스턴 마틴에 자금을 투입해 지분을 확장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애스턴 마틴은 007 영화 속 제임스 본드가 탄 차로 유명하다.

지난해 12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 메가박스 앞에서 애스턴마틴의 차세대 하이퍼카 '발할라'가 선보이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해 12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 메가박스 앞에서 애스턴마틴의 차세대 하이퍼카 '발할라'가 선보이고 있다. [중앙포토]

이처럼 중국 자동차 업체의 행보는 해외 유력 경제 매체가 주목하는 일이 됐다. FT 기사에는 중국 자동차 산업의 굴기에 대한 두려움이 느껴진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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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는 “중국 베이징자동차(BAIC)도 메르세데스-벤츠 지분 10% 매입에 나선 것으로 알려져 독일 내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지리가 확보한 지분과 BAIC기 매입할 지분을 합치면 20%가 되는데 이 정도 규모면 메르세데스-벤츠 이사회 의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FT에 따르면 최근 메르세데스-벤츠 주주총회에선 “엠블럼을 용(龍)으로 바꾸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 섞인 우려도 나왔다고 한다.

중국 스스로는 어떻게 평가할까. 아직은 유럽이나 일본, 미국에 대적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

그런데 한국은 이미 이겼다고 본다.

중국 지리 자동차의 제품.[먀오젠닷컴 캡처]

중국 지리 자동차의 제품.[먀오젠닷컴 캡처]

그것도 2년 전부터 앞섰다고 분석한다. 중국 상무부가 최근 공개한 ‘2019년판 자동차무역질적성장발전보고서’에서다. 상무부 대외무역사(司)가 중국자동차기술연구센터에 의뢰해 작성한 보고서는 "중국 자동차 사업의 국제 경쟁력이 전반적으로 한국을 웃돌게 됐다"고 결론 내린다.
기점은 2018년이다. 보고서는 중국이 종합 산업 경쟁력 면에서 독일, 일본, 미국에는 뒤진다고 봤다. 다만 한국보다는 앞선다고 평가했다. 구체적으로 ▶자동차 부품 산업▶연구개발(R&D)투자▶자국 자동차 시장 규모▶국산 차량 자국 시장 점유율▶노동생산성▶신제품 출시능력▶생산비용 등 7개 항목에서 한국을 추월했다고 봤다.

알기 쉽게 숫자로도 제시했다.

보고서는 중국의 경쟁력은 독일의 76.3% 수준이라고 봤다. 독일만큼은 아니지만 일본(78.9%), 미국(89.3%)에게도 중국 자동차 산업 경쟁력이 뒤진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한국엔 104.1%로 근소하게 앞섰다고 분석했다.

보고서에선 수출 규모에서 중국이 세계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한다. 지난 2013~2018년 중국의 자동차 수출 총액이 이미 460억 달러(약 53조 2000억 원)에서 지난해 기준 606억 달러(약 70조 원)로 많이 증가했다. 같은 기간 중국 자동차 산업이 전 세계 자동차 수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3.4%에서 3.9%로 올랐다.

중국 지리 자동차 생산공장. [중앙포토]

중국 지리 자동차 생산공장. [중앙포토]

이에 따른 연평균 성장률은 세계 1위다. 독일과 미국, 한국, 일본보다 모두 높다. 가격도 비싸졌다. 보고서는 "2018년 중국 완성차의 수출 평균단가가 1만5000달러로 2013년보다 10.6%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특히 알제리,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 중국이 적극적으로 추진 중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국가에 대한 수출이 많이 증가한 점을 치켜세운다. 보고서는 “2018년을 기점으로 이들 국가에 대한 완성차 수출액의 비중이 이미 67%를 돌파했다”며 “특히 유럽과 미국, 일본 등 자동차 산업 선진국을 대상으로 한 중국 자동차 수출 규모 역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라고 밝혔다.

품질 수준도 중국 브랜드와 세계와의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고 봤다. 근거로는 중국 자동차 회사가 해외에 설립하거나 제휴한 공장이 2018년 말 시점에 140곳에 달하고 해외 판매서비스 거점도 9000곳을 넘어섰다는 점을 들었다.

지리상용차가 만든 전기트럭 E200. 볼보자동차의 주행거리 연장 기술이 적용됐다. [지리자동차 홈페이지 캡처]

지리상용차가 만든 전기트럭 E200. 볼보자동차의 주행거리 연장 기술이 적용됐다. [지리자동차 홈페이지 캡처]

신에너지 자동차 분야는 중국 상무부가 향후 자국 자동차 산업의 꾸준한 성장 동력으로 보는 곳이다. 배출가스 규제가 강화되면서 이 분야가 빠르게 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중국 완성차의 수출 평균단가가 1만5000달러지만 같은 시기 유럽 수출용 신에너지 버스 1대당 가격은 50만 달러에 육박했다. 보고서는 “향후 몇 년 동안 중국의 신에너지 자동차 수출 규모가 가파른 성장세를 유지할 것”이라며 “대외 개발 수준을 높이는 등 주요 외자 기업들의 중국 내 생산과 수출 규모를 증가시킬 수 있는 법적 기반도 마련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이유다.

물론 중국 스스로 내린 장밋빛(?) 분석일 수 있다.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는 반론도 제기할 수 있다.

문제는 한국 자동차에 대한 중국인의 시선이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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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시장에서 한국 자동차 위상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중국 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8월 중국 자동차 시장 점유율은 독일계(23.8%), 일본계(21.7%), 미국계(9.5%), 한국계(5.0%)의 순이었다.

보고서는 중국 자동차 업계가 핵심 기술을 많이 확보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제품의 질적 수준과 브랜드 위상도 낮다. 이에 중국 자동차 업체들은 해외 유명 자동차 브랜드를 인수해 이를 벌충하려 한다.

현대·기아차는 사드(THAAD·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가 벌어진 2017년 이후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중국에서 현대·기아차는 81만대를 판매하는 데 그쳤다. 사드 사태 전인 2016년 179만대의 절반 수준이다. 판매 부진이 이어지자 현대차 중국 합작법인인 베이징현대는 지난해 중국 베이징 1공장, 기아차 중국 합작법인 둥펑웨다기아는 장쑤성 옌청 1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중국에서 한국차는 예전만큼 높게 평가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시각이 중국 상무부 보고서에도 담긴 것으로 봐야 한다.

물론 중국 자동차 산업도 아직 한계가 많다.

테슬라의 모델3[사진 셔터스톡]

테슬라의 모델3[사진 셔터스톡]

전기차 같은 신기술 분야에서도 중국이 시장을 압도하지 못한다. 당장 자국 시장에서도 그렇다. 지난 6일 중국 경제지 '21세기경제보도'는 “테슬라가 중국산 전기차 모델3의 가격을 33만 위안(약 5550만원)에서 29만9000위안(약 5030만원)으로 낮춘다고 발표했다”며 "테슬라가 (중국산 차량에 대한) '학살'의 막을 올렸다"고 평가했다. 아직도 가격만 낮으면 유명 브랜드에 자리를 뺏기는 것이 중국 자동차 산업의 현실이다.

어렵긴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한국에도 기회가 있다는 말이다. 물론 앞선 기술과 차별화된 상품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전제 조건이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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