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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밥·사랑 베푼 ‘화단 신사’…이대원, 일식·화이트와인 즐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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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0호 26면

황인의 ‘예술가의 한끼’

경성제대 법대 출신의 화가 이대원. [사진 김용철]

경성제대 법대 출신의 화가 이대원. [사진 김용철]

미술계를 전혀 모르는 어느 관상가에게 유명 화가들의 사진을 내놓고 물었다. 이들 중에서 가장 관상이 좋은 사람은? 대답은 이대원(李大源·1921~2005)이었다. 이대원은 미남이다. 누가 봐도 엘리트의 풍모다. 키가 훤칠하고 팔다리가 긴 서구형 체격이다. 경성제대를 나온 데다 화가 중에서는 최초로 대학 총장을 지냈다. 5개 외국어를 구사하는 능력자였다. 그가 나타나면 전시장의 분위기가 불을 켠 듯 갑자기 환해졌다.

경성제대 법학부 나온 엘리트 #홍익대 총장까지 지낸 호사가 #통속적 화가 모습과는 거리 멀어 #훤칠한 풍모에 5개 외국어 구사 #국내 첫 상업 반도화랑 운영도 #색선·광선 에너지로 따뜻함 표현

이대원은 경기도 문산에서 태어났다. 유복한 집안이었다. 경성제2고보(경복고)에 재학 중인 어린 나이에 프로들의 무대인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했다.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한 그는 상식대로 살기만 한다면 탄탄대로가 보장된 인생이었다. 그러나 그의 미래는 엉뚱하게도 화가라는 과외의 길로 향했다.

김원룡 “이대원, 가장 팔자 좋은 사람”

1956년 반도호텔(현재의 롯데호텔) 내에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화랑인 반도화랑이 문을 열었다. 이대원이 운영을 맡았다. 이 화랑을 통해 박수근·장욱진·변관식·장우성·도상봉·윤중식·김환기·유영국 등 여러 화가의 전시회가 열렸다. 반도화랑의 직원이었던 박명자는 여기서 실력을 쌓아 나중에 현대화랑을 개관하게 된다.

그가 홍익대 교수가 된 데에는 그가 다닌 경성제2고보고와의 인연이 큰 작용을 했다. 경성제2고보 출신으로 홍익대 이사장이었던 이도영은 67년 이대원·유영국·김창억·임완규·권옥연(강사) 등 경성제2고보 출신의 화가들을 대거 홍익대 교수로 채용했다. 이들은 모두 경성제2고보 미술교사인 사토 구니오(佐藤九二男·1897~1945)의 제자들이었다. 이대원은 정식으로 미술대학을 다닌 적이 없기에 우선 외서강독 교수로 채용됐다.

미대를 나오지 않았다는 점과 당시의 유행인 추상미술이 아닌 구상미술을 했다는 점이 더해져 비주류로 몰릴 수도 있었던 이대원이 화단의 중심에 우뚝 서게 된 계기는 75년 현대화랑의 개인전을 통해서다. 반도화랑에서 일하던 박명자가 개관한 현대화랑은 어느새 한국 최고의 화랑이 되어 있었다. 개인전을 마치고 승용차를 몰고 혜화동 자택으로 돌아가는 삼청터널 길에서 이대원은 흥분된 목소리로 이날 전시회 개막식의 기록사진을 맡은 홍익대 대학원생 김용철에게 전시에 대한 느낌을 물었다. 전시는 성공적이었고 작가로서의 이대원의 입지는 확실하게 굳어졌다.

고고학자 김원룡은 이대원을 가리켜 ‘가장 팔자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팔자가 좋았던 만큼 그의 삶은 유유자적이었다. 총장 신분으로 홍익대 앞 유정다방에 혼자 앉아서 사람을 기다리는 일도 많았다. 80년대 초반 서울의 일부 사립대 총장들은 경호원을 대신한 비서들을 차량에 대동하고 다니며 신변의 안전을 꾀하기도 했다. 학교 앞 다방에서 학생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는 총장의 모습은 당시로써는 매우 파격적이었다.

이대원은 호사가다. 그는 미식을 즐겼다. 그의 단골집은 홍익대 앞의 서교호텔 2층 일식집, 신촌의 희원, 조선호텔의 나인스 게이트(현재의 더 서클) 등이었다.

원구단 너머로 저녁해가 뉘엿뉘엿 기울면 나인스 게이트에 그가 나타나 카운터 앞에 앉는다. 화이트 와인은 그가 애호하는 주종이다. 말동무 한둘이 나타나 그 옆에 앉는다. 일본인, 독일인, 파리에서 갓 돌아온 후배 화가 등등 매일 저녁 다양하게 말동무의 풍모가 바뀐다.

이대원의 파주농장에 모인 지인들. 앞줄 왼쪽 둘째부터 오른쪽으로 한도룡, 문봉선, 신성희, 일곱째 주태석, 뒷줄 맨왼쪽 김용철, 맨오른쪽 안종문. [사진 김용철]

이대원의 파주농장에 모인 지인들. 앞줄 왼쪽 둘째부터 오른쪽으로 한도룡, 문봉선, 신성희, 일곱째 주태석, 뒷줄 맨왼쪽 김용철, 맨오른쪽 안종문. [사진 김용철]

1914년 독일 건축가 게오르크 데 랄란데의 설계로 세워진 조선호텔에는 무용가 최승희·이승만·서재필과 메릴린 먼로 등 수많은 명사가 드나들었지만, 이들 중에서 이대원처럼 붙박이로 호텔 풍경의 일부가 된 경우는 없다. 카운트에서 즉흥으로 작은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조선의 민화를 수집하며 민예운동을 했던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1889~1961)는 서울을 찾으면 조선호텔에 머물렀다. 청량리의 총독부 산림과 직원인 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1891-1931)가 그를 찾아 조선호텔로 오곤 했다. 이대원은 우리에게 친숙한 야나기 무네요시를 차별의식의 소유자라고 비판했다. 대신 다소 덜 알려졌으나 조선의 도자기와 공예품을 깊이 연구했고 조선을 사랑한 나머지 육신을 망우리 공동묘지에 묻힌 아사카와 다쿠미에게는 그런 차별의식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카사키 소지가 쓴 『조선의 흙이 된 일본인-아사카와 다쿠미의 생애』를 본인이 직접 우리말로 번역 출판하기도 했다. 이대원 자신도 도자기와 공예품 수집을 즐겼다. 과거의 혼백들을 모두 조선호텔로 불러 모아 자신의 논지를 뜨겁게 설파하는 이대원의 모습에는 교양과 박력이 넘쳤다.

홍익대 교수 시절, 점심은 주로 학교앞 서교호텔 2층 일식집에서 먹었다. 맥주 한잔을 가볍게 하고선 식사를 시작했다. 신촌의 일식집 희원도 자주 찾았다. 이때마다 디자이너 한도룡과 안종문 등 홍익대 동료들이 가세했다. 부탁을 해놓았는지 그가 나타나면 일식집에는 찾기 힘든 화이트 와인이 빠짐없이 상 위에 올려졌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밥값을 내는 걸 좋아했다. 장지갑에는 언제나 현금이 두둑하게 들어 있었다. 그는 인사동 선천에서 정기적인 식사모임을 열어 노변정담을 즐겼다. 한도룡, 안종문, 미술평론가 유준상, 화가 김경인, 화가 전성우 등이 주요 멤버였다. 물론 계산은 언제고 이대원이 맡았다.

서교호텔 일식집, 신촌 희원 등 단골

이대원의 ‘배나무’, 캔버스 유화, 89.4x130cm, 1996년. [사진 갤러리현대]

이대원의 ‘배나무’, 캔버스 유화, 89.4x130cm, 1996년. [사진 갤러리현대]

파주 탄현에는 일경과원이 있다. 그의 부친인 일경(一耕) 이종림이 장만한 과수원이다. 이대원은 부친의 호를 대물림하여 이경(二耕)이라 호를 지었다. 배나무밭인 일경과원에는 이대원의 작업실이 있다. 주말에는 이 작업실을 찾았다. 여기서 배밭을 그렸다. 캔버스에 드로잉을 하고 나서 옆면에 날짜를 기입한 다음 10호, 20호의 소품들은 홍대에서 산울림극장으로 가는 길 빌딩 2층의 작업실로 가져와 페인팅을 했다. 홍익대 총장을 지내는 동안에도 바쁜 시간을 쪼개어 파주와 홍대 앞 작업실을 오가며 그림을 그렸다.

일경과원에서 파티가 열리면 조선호텔에서 케이터링을 맡았다. 파티가 끝나면 호텔에서 만든 빵 등을 담은 선물꾸러미가 손님들의 손에 쥐어졌다. 가을에는 일경과원에서 딴 배를 한 상자씩 주변 사람들에게 돌렸다. 뭐든 주고 베푸는 게 그의 취미였다. 후배들의 작품들도 많이 사 주었다. 평생 따뜻한 밥과 따뜻한 사랑을 베풀고 살았다.

그의 화면을 점묘화에 비유하기도 한다. 자세히 보면 점묘화의 색점이라기보다는 동양화의 준법에 가까운 색선이자 짤막하게 끊어 친 광선이에 더 가깝다. 점묘화가 색점의 배열을 통해 보다 선명한 빛의 세계를 정적으로 구현했다면 그의 그림은 색선과 광선의 기운생동이 주는 동적인 에너지를 통해 삶의 근원적인 따뜻함을 표현하고 있다.

살아생전의 모습으로 보존된 파주 일경과원의 작업실에는 그가 창문 밖을 통해서 본 배밭 풍경의 드로잉이 금방 붓을 뗀 듯 이젤 위의 캔버스에 생생하게 담겨 있다. 둔각으로 길게 늘어진 겨울 볕이 그림 속의 배밭을 따뜻하게 비추고 있다. 삶에서도 그림에서도 따뜻함은 그의 미덕이었다.

황인 미술평론가
미술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전시기획과 공학과 미술을 융합하는 학제 간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 현대화랑에서 일하면서 지금은 거의 작고한 대표적 화가들을 많이 만났다. 문학·무용·음악 등 다른 장르의 문화인들과도 교유를 확장해 나갔다. 골목기행과 홍대 앞 게릴라 문화를 즐기며 가성비가 높은 중저가 음식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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