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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아르고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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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장혜수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장혜수 스포츠팀장

장혜수 스포츠팀장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아르고스라는 도시가 있다. 저 옛날 신화시대에 이곳을 다스리던 아르고스라는 왕이 있었다. 왕의 증손자도 이름이 아르고스인데, 별명이 파놉테스라서 아르고스 파놉테스(이하 아르고스)로 불렸다. 파놉테스(panoptes)는 ‘모든 것(pan)을 보는 자(optes)’란 뜻이다. 어떻게 모든 것을 볼 수 있는가. 그는 100개의 눈을 가진 거인이다. 이쯤 되면 그리스 신화에서 들어본 기억이 날 것도 같다.

상세한 전후 이야기를 풀어내면 이렇다. 제우스는 강의 신 이나코스의 딸 이오와 바람을 피웠다. 이오는 원래 헤라를 모시는 여사제였다. 제우스는 혹시나 아내 헤라가 눈치챌까 봐 이오를 암송아지로 변신시켰다. 남편의 부정을 찾아내는 헤라의 ‘촉’은 역시나 대단했다. 제우스에게 암송아지를 선물로 달라고 요구해서 받아냈다. 그리고는 아르고스에게 암송아지를 감시하라고 시켰다. 아르고스는 이오를 올리브 나무에 묶어놓고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이오의 슬픈 울음소리를 견디다 못한 제우스는 헤르메스에게 아르고스를 처단하라고 지시했다. 아르고스는 100개의 눈을 모두 감는 법이 없다. 잘 때도 몇 개만 감을 뿐 대부분의 눈은 뜨고 있다. 헤르메스는 이야기와 피리 소리로 아르고스를 졸리게 했다. 이어 모든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빠진 아르고스의 목을 베어 죽였다. 충복의 죽음을 슬퍼한 헤라는 죽은 아르고스의 눈을 자신의 성조(聖鳥)인 공작에게 옮겼다. 바로 공작의 깃털 눈(peacock eye)의 유래다.

아르고스를 떠올린 건 시간이 흐를수록 더 침침해지는 노안 때문이다. 긴 시간 책을 읽기 불편해 ‘나도 아르고스처럼 눈이 100개쯤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난해 2월 국회는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돕기 위해 소셜미디어(SNS) 데이터를 융합·분석해 제공하는 서비스를 내놓았다. 분석 데이터를 언급량 추이, 이슈 히스토리, 연관어 맵, 긍·부정 감성어 등으로 시각화해 제공한다. 웹사이트 주소(argos.nanet.go.kr)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서비스 이름이 ‘아르고스’다. ‘잠들지 말고 국민의 뜻을 지켜보라’는 뜻에서 이렇게 이름 붙였을 거라 짐작한다. 21대 총선일(4월 15일)까지, 즉 20대 국회 임기 종료까지 석 달이나 남았다. 의원들께선 국민에게서 눈을 떼지 않기 바란다. 눈 감고 잠들었던 아르고스의 운명을 생각하고.

장혜수 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