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청약 가점제 후폭풍 … 벌써부터 형평성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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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부터 시행되는 청약 가점제는 무주택 고령자의 당첨 가능성을 크게 넓힐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값비싼 곳에 고액의 전세를 사는 사람이 이보다 값싼 집을 소유한 사람보다 더 유리하게 되는 등 불합리한 점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주택도시연구원 김종림 수석연구원은 "복권처럼 변해버린 청약제도를 개편할 필요성은 있다"며 "하지만 불이익을 당하는 이들에 대한 보완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준현 기자, 손동우 인턴기자

한 건설업체의 견본주택을 청약자들이 줄 지어 구경하고 있다. 2008년 가점제가 시행되면 무주택 기간이 길고 나이와 부양가족 수가 많을수록 당첨될 확률이 높아진다. [중앙포토]

서민이 더 불리
5000만원 안 되는 집 소유자
수억대 전세보다 점수 낮아

◆ 고액 전세자가 저가 유주택자보다 유리=2010년부터 가점제 항목에는 가구소득과 함께 부동산 자산이 포함된다.

이 경우 주택의 공시가격이 5000만원도 안 되는 유주택자가 수억원짜리 전세에 세들어 사는 사람보다 훨씬 불리하게 된다.

내집 마련 꿈을 이루겠다며 작은 집이라도 가진 사람과 무주택에 대한 분양혜택을 믿고 집 매수를 미뤄온 고액 전세자의 당첨 가능성이 역전되는 것이다.

주택산업연구원이 발표한 청약제도 개편안에 따르면 보유주택이 아예 없으면 최대 170점(무주택기간 10년)을 받지만 청약을 위해 2년 전 집을 팔았다면 104점(무주택기간 2년)밖에 받지 못한다. 이 조건 하나로만 66점의 격차가 생긴다.

보유 주택을 팔지 않았다면 점수 차는 더 벌어진다. 지금은 6평 이하 다세대 주택이나 농가주택은 무주택자로 간주된다.

건설교통부 임의택 공공주택팀장은 "일정 이하의 자산을 보유하면 무주택자로 간주하는 문제 등을 충분히 논의했지만 하한선 설정 문제와 객관적 자료를 제시토록 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제외됐다"고 말했다.

집 넓히기 봉쇄
유주택자 당첨 가능성 낮아
"주거 수준 향상" 취지 무색

◆ 유주택자가 집 넓히기 힘들어=청약제도는 무주택 서민의 내집 마련 기회와 주택수요의 고급화에 대응해 주거수준의 향상을 뒷받침하겠다며 1978년 처음으로 도입됐다. 하지만 청약가점제가 실시되면 미분양이 많은 지방을 제외하곤 주거수준을 높이기가 힘들어졌다. 전용면적 18평짜리 주택에서 살다가 25.7평으로 집을 넓힐 경우 유주택자인 데다 무주택기간이 없거나 짧아 사실상 당첨 가능성이 크게 낮아진다. 물론 전용면적 25.7평 초과의 공공택지 내 아파트에 청약하면 되지만 채권입찰제 시행으로 분양가가 크게 높아져 서민들로선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채권입찰제를 시행하는 아파트에서도 결국은 가점제로 당락이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독신자 푸대접
부양가족 가중치 가장 높아
'나 홀로 가구'엔 바늘구멍

◆ 젊은 층.무자녀 가구 등 푸대접=2008년부터 2년간은 부양가족 수(가구구성과 자녀 수)의 가중치가 35점으로 가장 높고, 무주택기간도 32점이나 된다.

2010년부턴 가구소득 등도 포함돼 가중치는 조금 낮아지지만 다른 항목에 비해선 높은 편이다. 젊은 층과 자녀가 없거나 이혼한 가구가 당첨될 확률이 크게 줄어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현행 인구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탁상정책이란 지적이 일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1일 기준으로 가족 수가 한 명 또는 두 명에 불과한 가구와 자녀 없이 부부만 살거나 형제자매끼리 사는 1세대 가구가 전체의 5분의 1에 이를 정도로 늘었다. 또 정부가 2000년 청약통장 가입 대상을 세대주에서 20세 이상 성인으로 확대하면서 젊은 층의 청약수요가 크게 늘었다.

한 네티즌(sideleft)은 "노부모를 모시고 살거나 자녀가 없는 것은 사회구조적인 문제인데 이를 청약제도와 연계시키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이런 정책 100만 개를 만들어도 자녀를 많이 낳지 않을 것"이라고 불평했다.

위장전입 조장
노부모 모시면 점수 더 줘
'서류상 동거' 늘어날 우려

◆ 위장전입 늘어날 수도=청약을 통해 원가연동제가 적용되는 공공택지 내 25.7평 이하 주택을 구입하려면 최소한 5~10년을 무주택자로 버티면서 나이 먹기를 기다려야 한다. 무주택 기간이 길고, 나이가 많을수록 점수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아니면 부모(처부모 포함), 조부모의 주소지를 본인 주민등록지로 옮겨놓아야 당첨 확률이 높아진다. 특히 조부모까지 부양하는 3세대 가구는 최고 가점을 받는다. 하지만 실제 거주 여부를 따지지 않기 때문에 위장전입이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건국대 손재영 (부동산학)교수는 "모든 제도에는 양면성이 있긴 하지만 현재 드러나고 있는 문제점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아 그에 맞게 정부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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