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look] 일단 불 끈 중동쇼크…시장은 더 불확실해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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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미국·이란의 무력충돌 이후 흔들렸던 금융시장은 제자리로 돌아왔다. 코스피지수는 한때 2137까지 떨어졌으나 9일 2186.45로 마감하며 관련 소식이 전해지기 이전(2일 2175.17)보다 올랐다. 미국 나스닥지수도 8일(현지 시간) 9129.24로 거래를 마치며 역대 최고가를 기록하는 등 주요국 증시가 오르고, 달러 대비 원화가치도 상승하는 등 금융시장은 빠르게 안정되고 있다. 유가와 안전자산을 상징하는 금 가격은 상승 흐름이지만 확연한 급등세는 아니다.

김학균 센터장이 본 금융시장 전망 #증시·유가·금값 빠른 안정 뒤엔 #미 ‘셰일오일’이 이끈 저금리의 힘 #세계경제 회복 기대감은 약화돼 #중동리스크 장기화 땐 한국 타격

금융시장은 미국의 새로운 힘을 실감하고 있다. 미국을 거대한 산유국으로 만든 ‘셰일오일’이다. 예전에는 중동에서 긴장이 고조되면 국제 유가가 하루에 5% 이상 급등하는 경우가 예사였다. 그러나 최근 긴장 국면에서의 상승세는 완만하다. 지난해 9월 사우디 유전에 대한 드론 테러 때도 반짝 상승세를 보인 뒤 이내 안정세로 돌아선 바 있다. 이는 미국이 2014년 원유 생산량 세계 1위 국가로 오른 뒤 국제 원유시장에 구조적인 공급 증가 요인이 생겼기 때문이다. 미국 셰일오일 업체들의 손익분기점은 2012년 배럴당 90달러 내외에서 최근에는 40달러 내외까지 하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국제 유가 안정은 주요국 중앙은행이 저금리 정책을 펼치는 동력이다. 유가 인상에 따른 물가 상승 압박이 적다 보니 유동성 확대 및 금리 인하 등 완화적 통화정책을 이어가고 있다. 덕분에 지난해 미국·독일·일본 기업의 수익은 전년보다 나빠졌지만, 증시는 풍부한 유동성의 힘으로 크게 오를 수 있었다. 최근 금융시장이 빠르게 안정되고 있는 근저에는 ‘유가 상승 → 인플레이션 압박 → 저금리 정책 제동’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펼쳐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는 것이다.

다만 금융시장의 우려는 불확실성의 확대다. 불똥은 언제든지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 등 주변국으로 튈 수 있다. 중동 석유의 최대 교역로인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될 수 있다는 걱정도 여전하다. 재선 도전에 나선 트럼프 대통령의 국내적 상황에 따라 ‘중동 리스크’는 언제든지 악화할 수 있다.

미·이란 충돌에도 오른 나스닥 지수

미·이란 충돌에도 오른 나스닥 지수

이런 식으로 중동의 불안이 장기화하면 세계 금융시장의 변동성은 커지게 되고, 유가도 영향을 받는다. 이는 우리 경제에도 짐이다. 투자자금이 안전자산인 미국 달러로 쏠릴 수도 있고, 국제무역이 위축될 경우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도 타격을 입는다.

세계 실물경제의 회복 강도는 금융시장에 비해 훨씬 무겁고 더디게 나타나고 있다. 세계은행은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5%로 발표했다. 지난해 6월 전망치(2.7%)에서 0.2%포인트 하향 조정한 것이다. 중국 성장둔화와 미·중 무역분쟁 등을 하향 조정의 이유로 꼽았다. 세계은행은 미국·이란 갈등을 반영하지 않았는데, 앞으로의 전개에 따라 성장률은 더 떨어질 수도 있다는 의미다. 영국의 조사기관은 ‘캐피털 이코노믹스’는 미국·이란 긴장이 군사적 충돌을 수반하는 전면전으로 확대될 경우, 세계 성장률은 0.3~0.5%포인트 덜어지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물가는 3.5~4.0%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김학균

김학균

상황을 종합하면 두 나라 간 전면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예전 같으면 오판을 불렀을 민감한 정보들이 지금은 많이 노출돼있고, 세계 각국이 더 조밀하게 얽혀있다. 그런 점들이 확전 소지를 떨어뜨리고 있다. 하지만 당초 기대했던 올해 세계 경제의 개선과 글로벌 교역 증대의 예상이라는 기대감이 연초 터진 중동발(發) 변수로 점차 약화하고 있다는 게 부담이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금융투자업계에서 손꼽히는 거시경제, 장기 투자전략 분야 전문가로 여러 차례 ‘베스트 애널리스트’에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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