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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금태섭은 배신자인가, 애국자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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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전성철 글로벌 스탠더드 연구원(IGS) 회장

전성철 글로벌 스탠더드 연구원(IGS) 회장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법안 표결에 기권했다가 민주당 내부에서 비난을 받고 있다. 한 마디로 배신자라는 것이다. 사실 이 에피소드는 한국 정치의 가장 중요한 딜레마를 상징한다. 즉, 국회의원은 당에 충성해야 하나, 아니면 나라에 충성해야 하느냐의 문제다.

공수처법 기권하자 비난 쏟아져 #당론 정치 악습 깨는 희망 사례

국회의원이 법안에 대해 찬반을 정할 때 주로 고려할 수 있는 것은 ▶지역구민의 의견 ▶국가 전체의 이익 ▶자신의 소신 ▶ 당론 등 네 가지다.

금 의원 비판론자들은 국회의원이 이 네 가지 중에서 당론을 최우선시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이것이 과연 옳은 생각일까. 제대로 된 대통령제 민주 국가 중 한국 같이 의원들에게 이런 식으로 당론을 강제하는 나라는 없다.  외국 정치인들에게 한국의 상황을 이야기해 주면 하나같이 많이 놀란다. 소위 당당한 ‘헌법 기관’ 이 어떻게 거수기 노릇밖에 못 하느냐는 반응이다.

이 문제를 정치 이론적 관점에서 한번 보자. 우선 당론이라는 것은 원칙적으로 대통령제에서는 있어서는 안 되는 개념이다. 이것은 내각제에만 있는 제도다. 내각제의 본질을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대통령제와 달리 내각제는 개인이 아니라 한 정당이 집권하는 체제다. 그러니 정당 의원들이 하나가 돼 투표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당론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당론이 이렇게 의원들을 묶으면 국민 전체의 의견이 무시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한 마디로 그렇지 않다. 내각제에서는 국민이 언제든지 정권을 바꾸는 길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즉, 개별 법안에 일일이 지역구민의 뜻이 반영되지는 않지만 유사시에는 언제라도 내각 불신임을 통해 정권 교체를 이룰 수 있기 때문에 국민주권이 살아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제는 이와는 확연히 다르다.  임기가 있기 때문에 탄핵을 제외하고는 대통령을 중간에 쫓아낼 수가 없다. 그러면 그 임기 동안 국민의 뜻은 국정에 어떻게 반영되는가. 예를 들어 공수처 법안에 반대하는 국민의 뜻은 국회에 어떻게 반영되는가. 바로 각 지역구 출신 의원을 통해서 반영돼야 한다. 당론으로 묶이지 않으면 의원들은 자연히 그렇게 한다. 바로 다음 선거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각 지역 구민들의 의견이 그 지역 의원들을 통해 의사당으로 수렴되는 것이 민주적 대통령제가 작동하는 기본 원리다.

한 마디로 대통령제에서 정당에 당론이 있다는 것은 정당의 보스들이 국민으로부터 주권을 빼앗았다는 의미다.  이런 당론 정치의 가장 큰 폐해가 무엇일까. 바로 ‘패싸움 정치’다. 한쪽이 ‘패’를 만드니 상대도 ‘패’를 만들 수밖에 없다. 당론 정치와 패싸움 정치는 둘 다 세계적으로 민주국가 역사상 유례가 없는 특이한 현상이다.

대한민국 국회에 당론 정치가 가능한 가장 큰 이유는 공천권을 대부분 정당의 보스가 행사하기 때문이다. 공천권 때문에 의원들이 보스에게 꼼짝 못 한다. 선진 민주국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한국 정치는 왜 이렇게 기형적으로 변했을까. 바로 개발독재 시대의 유산이다. 조국 근대화를 하루빨리 이루고 싶었던 박정희 대통령은 말 많은 국회의원들이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것을 막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당을 나치 식 독재 정당 같이 만들어 버렸다. 당 총재 또는 보스의 명령에 따라 모든 의원이 ‘졸개’같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그런 정당 말이다. 그래서 당론이라는 것이 생겼다.

한국 정치가 선진화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당론 정치를 종식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금태섭 의원의 공수처법 표결 기권은 국민 주권 회복을 향한 희망을 보게 하는 반가운 행동이었다. 크게 보면 배신자가 아니라 애국자인 셈이다.

전성철 글로벌 스탠더드 연구원(IGS)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