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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대국이라 다행”이라는 중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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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박성훈 기자 중앙일보 베이징특파원
박성훈 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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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의 이란 군부 실세 거셈 솔레이마니 살해로 촉발된 중동 사태에 관심이 뜨겁다. 15일 미국과 1단계 무역 합의문 서명을 앞둔 중국은 중동 사태가 미 정부에 미칠 파장에 촉각이 곤두서 있다.

중국 당국의 공식 입장은 미국을 비판하되 양국 간 대화를 통한 해결을 촉구하는 것이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은 국제 관계에서 무력을 사용하는 것에 반대하며 미국이 냉정함을 유지하고 자제해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을 피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양국 모두에 자제를 촉구하는 ‘거룩한’ 말씀을 내놓은 상태다. 비판 수위를 조절했다는 인상이 강하다.

이런 중국의 속내를 엿볼 수 있는 두 가지 반응이 관심을 끈다. 대표적인 게 중국 관영 환구시보 총편집 후시진이 웨이보에 올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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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중국이 핵 대국이라 다행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한번 상상이나 해보라”며 미·중 사이에 이데올로기, 신장, 티베트, 대만, 홍콩, 남중국해 등 수많은 문제가 도사리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그러면서 “미국이 지금은 중국을 욕하며 기껏해야 무역 전쟁을 일으켰지만, 중국에 대한 (무력 사용) 충동을 자제시킬 수 있었다”고 썼다. 핵이 없었다면 중국도 이란 신세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란 자조가 담겼다.

이어 “둥펑-41(대륙간탄도미사일)이나 핵잠수함은 먹을 수도 마실 수도 없지만, 중국은 이를 매일 이용하고 있다”며 “핵 보유국의 지위와 국방력은 중국이 독자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권리를 준 것”이라고도 했다. 이는 중국이 깨어있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미국의 실력 행사를 보며 중국이 조용히 군비 증강에 더 힘을 써야 한다는 메시지에 다름 아니다.

다른 하나는 환구시보의 6일자 사설이다. 중국의 또 다른 셈법이 담겼다. 사설은 미국과 이란이 전면전을 벌이면 중국에 득보다 실이 더 크다는 점을 지적한다. 중동이 대란에 빠지면 미국의 관심을 분산시킬 순 있지만 중동 석유 구매량 세계 1위인 중국의 경제적 충격이 더 크다는 것이다.

미국이 중동 문제에 매여 있다고 해도 미국의 전략적 판단이 바뀌는 건 아니라고도 강조했다. 단지 처리 사안의 우선순위만 바뀔 뿐이라면서다. 결론은 중국이 미국의 압력에 대응할 장기적 능력을 구축하는 시기로 삼아야 한다는 조언이었다.

중국의 이 같은 계산은 미국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며 내부적으로 대응책을 마련하는 형태로 흘러갈 공산이 크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판단 역시 중국과 비슷하지 않을까.

박성훈 베이징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