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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 혼자 집에서 나간 뒤 사라졌다…"악기상자 탈출은 날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카를로스 곤 전 닛산자동차 회장이 레바논으로 도주한지 나흘이 지났지만 그의 출국 경위에 대한 미스터리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29일 자택 CCTV에 찍혀…귀가 모습 없어 #부인 캐롤, 로이터에 "날조" 주장 #프랑스TV, 레바논 도착한 곤 모습 공개 #레바논 법무장관, 송환 여부 언급 피해 #

3일 NHK에 따르면 곤은 지난달 29일 낮 도쿄 미나토구의 집에서 혼자 외출하는 모습이 집에 설치된 CCTV 카메라에 포착됐다. 이 시간대에 수상한 사람이 집을 드나든 흔적은 없었으며, 그 뒤로 곤이 귀가한 모습은 확인되지 않았다.

따라서 일본 경찰은 곤이 별도의 장소에서 누군가와 합류해 공항으로 향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일본 도쿄지검 관계자가 2일 도쿄 미나토구에 있는 카를로스 곤 전 닛산회장의 집을 수사한 뒤 밖으로 나오고 있다. [지지통신=연합뉴스]

일본 도쿄지검 관계자가 2일 도쿄 미나토구에 있는 카를로스 곤 전 닛산회장의 집을 수사한 뒤 밖으로 나오고 있다. [지지통신=연합뉴스]

경찰이 확보한 정황대로라면, 곤이 악기 상자에 몸을 숨겨 집 밖으로 나왔다는 그동안의 언론 보도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 실제 곤의 부인 캐롤은 2일 로이터통신에 일부 레바논 언론이 “악기 보관용 상자에 숨어서 출국했다”고 보도한데 대해 “날조”라고 주장했다.

곤은 3일 오전 미국의 공보담당자를 통해 성명을 내고, 자신이 레바논으로 입국하는 과정에 부인 캐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 곤은 “캐롤이나 가족이 일본을 출국하기 위해 역할을 했다는 미디어의 억측이 있었으나 모두 부정확하며 거짓말이다. 나 혼자서 출국 준비를했다. 가족은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 [AFP=연합뉴스]

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 [AFP=연합뉴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캐롤이 곤과 합류한 것은 레바논인 것으로 전해졌다. 캐롤은 WSJ 취재진에게 “(부부의 재회는) 인생 최고의 선물”이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고 한다. 곤은 프랑스, 브라질, 미국 등으로 도주하는 것도 검토했으나 “보다 우호적인 법적 환경”을 갖춘 레바논에서 재판을 받는 방안을 모색해왔다. 곤은 브라질에서 태어나 레바논, 프랑스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기독교 마론파다.

르몽드에 따르면 레바논행을 택한 건 부인 캐롤의 영향도 컸을 것으로 전해진다. 캐롤의 모친이 레바논 북부 출신의 남성과 재혼해, 이슬람교 수니파의 친인척이 여럿 있기 때문에 수니파가 많은 터키와 “상당히 좋은 관계”인 친인척들이 도주 계획을 지원해줬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 공영방송인 프랑스2가 공개한 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과 부인 캐롤의 사진. 곤이 레바논 베이루트에 도착한 뒤 처음 공개된 곤의 모습이다. [NHK 캡쳐]

프랑스 공영방송인 프랑스2가 공개한 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과 부인 캐롤의 사진. 곤이 레바논 베이루트에 도착한 뒤 처음 공개된 곤의 모습이다. [NHK 캡쳐]

프랑스 공영방송인 ‘프랑스2’는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서 찍힌 곤 부부의 사진을 내보냈다고 NHK가 보도했다. 사진에는 곤과 캐롤이 와인병이 놓인 테이블 앞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이 찍혔다. 프랑스2는 “사진은 지난달 31일 레바논에서 곤의 가족들이 저녁식사 모습이다. 곤 가족의 친구가 촬영한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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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레바논의 세르한 법무장관은 NHK에 “곤은 합법적인 서류를 갖고 레바논에 입국했다" "레바논 영토 내에서 어떤 법도 위반하지 않았다”는 등 곤의 체재에 법적인 문제가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또 레바논이 곤 회장의 도주를 도왔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선 “정확성이 결여됐으며, 고려할만하지 않다”고 부정했다. 그러나 곤의 입국 경위 등 상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며 언급을 피했다고 전했다.

세르한 장관은 인터폴(ICPO·국제형사경찰기구)의 수배 요청과 관련 “레바논의 법률에 의해 대응하겠다. 곤의 이야기를 듣는 등 필요한 조사를 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곤의 신병 송환을 요청할 경우에 대해선 “레바논 법률에 기반한 범위에서 요청에 협력하겠다. 일본과의 양국간 관계를 지지해나갈 것”이라고 답하면서도 송환에 응할 것인지 여부에 대해선 명확히 답하지 않았다.

레바논 베이루트에 있는 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의 자택을 개인 경비원이 지키고 있다. [AP=연합뉴스]

레바논 베이루트에 있는 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의 자택을 개인 경비원이 지키고 있다. [AP=연합뉴스]

일본과 레바논은 범죄인 인도에 관한 조약을 맺지 않고 있다. 또 레바논 형법에는 조약에 준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누구도 외국으로 송환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인터폴 수배 역시 강제력은 없으며 곤이 레바논에 있는 한 체포될 가능성은 낮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수사권이 미치지 않는 국가로 도주한 용의자에 대해선 최종적으로 대리 처벌 제도가 있다고 전했다. 일본 수사당국이 수사 자료를 상대국에 제공해 상대국 법률에 입각해 처벌해줄 것을 요청하는 것이다. 다만 이미 기소돼 재판을 진행중인 사건을 상대국에 위탁하는 것은 주권 포기로 보여질 수 있기 때문에 이 역시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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