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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 프랑스여권 2권 갖고 있었다"…레바논 대통령 '보호' 약속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카를로스 곤 전 닛산자동차 회장은 지난해 4월 9일 변호인을 통해 일본 내 외신기자들에게 동영상 성명을 발표했다. 곤 전 회장은 오는 8일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기자회견을 열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로이터=연합뉴스]

카를로스 곤 전 닛산자동차 회장은 지난해 4월 9일 변호인을 통해 일본 내 외신기자들에게 동영상 성명을 발표했다. 곤 전 회장은 오는 8일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기자회견을 열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로이터=연합뉴스]

카를로스 곤(65) 전 닛산자동차 회장의 레바논 도주를 둘러싼 미스터리가 꼬리를 물고 있다. 곤 전 회장이 출국하기 전 프랑스 여권을 2권 보유하고 있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2일 NHK는 곤 전 회장 측 관계자를 인용해 "곤 피고가 프랑스로부터 2권의 여권을 발급받았다"며 "법원의 허가를 얻어 이중 1권을 자물쇠가 달린 케이스에 넣은 상태로 휴대하고 다녔다"고 전했다.

변호인에 안 맡긴 여권으로 레바논 입국 #"적법하게 입국"…송환 문제 뇌관될 듯 #입국 직후 아운 대통령 면담설 돌아 #곤-아운, 같은 마론파 기독교 신자 #터키경찰, 경유 도운 혐의로 7명 검거 #

그간엔 다중국적자인 곤이 자신의 레바논, 브라질, 프랑스 여권을 일본인 변호사에게 전부 맡긴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외에 또 다른 여권이 있었다는 것이다. 곤이 이 여권을 이용해 레바논에 입국했을 가능성도 높다. 레바논 치안 당국자는 NHK에 "곤으로 보이는 남성이 레바논에 입국할 때 그의 서명이 있는 프랑스 여권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곤은 일본에선 법망을 피해 무단 출국하면서도 레바논에는 적법한 절차로 입국한 셈이다. 이 때문에 도주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레바논 당국과 사전에 논의했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곤의 송환 문제를 놓고 일본과 레바논 간 외교 공방이 일어날 것에 대비한 조치라는 것이다. 일본은 레바논과 범죄인 인도협정을 맺고 있지 않아 레바논 정부가 적극 협조하지 않는 한 송환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31일 카를로스 곤 전 닛산자동차 회장이 머물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레바논 베이루트의 한 저택을 방문한 현지 경찰이 조사를 마친 뒤 떠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31일 카를로스 곤 전 닛산자동차 회장이 머물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레바논 베이루트의 한 저택을 방문한 현지 경찰이 조사를 마친 뒤 떠나고 있다. [AP=연합뉴스]

실제 레바논 정부가 곤의 도주에 관여했다는 보도도 잇따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달 20일 레바논 정부가 곤의 송환을 일본 정부에 요청했다”며 “레바논 정부가 도주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1일 전했다.

FT는 곤의 도주 계획을 상세하게 알고 있는 복수의 인물을 인용해 “지난해 10월부터 곤은 도주 준비를 시작했고, 레바논 정부의 송환 움직임도 강해졌다”며 “미셸 아운 레바논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레바논을 찾은 스즈키 게이스케(鈴木馨祐) 외무성 부대신에게 송환을 직접 요청했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 내에선 도주 직전 이런 요청이 들어온 것을 우연으로 보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곤이 레바논 입국 직후 아운 대통령을 면담했으며 현지 보도까지 나오면서 이런 우려는 점점 커지는 상황이다. 아운 대통령이 곤에게 "레바논 시민으로서 보호하겠다"는 약속까지 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운 대통령과 곤이 기독교계 마론파 신자라는 공통점도 의혹 대상이다. 지지통신은 "종파 대립의 역사를 가진 레바논에서 두 사람은 동포"라면서 "레바논 정부 인사 중 가장 곤에게 가까운 사람이 대통령"이라고 짚었다.

그러나 곤 측은 레바논 정부와 관련성을 부인하고 있다. 곤의 변호인은 “(입국 경위는) 개인적인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여권을 이용한) 합법적인 입국으로 레바논의 수용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르피가로에 따르면 곤은 오는 8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곤은 레바논 입국 후 성명에서 "이제 언론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됐다"며 기자회견 개최를 예고했었다.

레바논 내 여론도 곤 송환에는 악재다. 레바논에선 성공한 곤에 대한 인기가 여전히 뜨겁다. 레바논 국민 사이에선 "곤이 우리의 자랑이란 사실엔 변함이 없다. 재판은 레바논에서 받아야만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고 아사히신문은 2일 베이루트발로 전했다.

카를로스 곤 전 회장이 지난해 4월 보석으로 풀려난 뒤 기거했던 도쿄 미나토구의 저택. [로이터=연합뉴스]

카를로스 곤 전 회장이 지난해 4월 보석으로 풀려난 뒤 기거했던 도쿄 미나토구의 저택. [로이터=연합뉴스]

한편 일본 검찰과 경찰은 곤의 ‘출국 미스터리’를 풀기 위한 수사에 착수했다. NHK에 따르면 2일 도쿄지검은 곤이 보석 중 기거했던 도쿄 미나토구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또 곤과 곤의 도주를 도왔을 가능성이 높은 인물들의 동선을 수사하기 위해 CCTV 조사에도 들어갔다.

앞서 일본 언론은 곤이 지난달 29일 악기 상자에 몰래 들어가는 수법으로 간사이 국제공항에서 개인 제트기로 출국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출입국재류관리청 데이터베이스에는 곤의 출국 기록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유지였던 터키에서도 곤 관련 수사가 진행 중이다. 2일 터키 민영 NTV에 따르면 현지 경찰은 곤의 경유를 도운 혐의로 7명을 구속했다. 이중 4명은 항공기 조종사로 전해졌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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