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민주당은 그 민주당 아니다”…선관위 공고에 고심 더 깊어진 민주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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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출 자유한국당 의원이 2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대해 무제한 토론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대출 자유한국당 의원이 2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대해 무제한 토론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례민주당과 더불어민주당의 당명이 유사하다고 볼 수 없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박병수 씨를 대표로 결성된 ‘비례민주당’ 창당준비위원회 결성 신고를 31일 공고했다.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박씨의 비례민주당을 유사명칭으로 보고 사용 불허를 선관위에 요청했지만 사실상 기각된 셈이다.

선관위 공고로 비례민주당은 내년 총선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만약 민주당이 비례위성정당을 만들더라도 ‘비례민주당’이란 이름은 쓰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선관위 관계자는 “정당법 42조의 ‘유사명칭 사용 금지 조항’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정당법 제41조 3항에 따르면 정당의 명칭은 등록 정당이 사용 중인 명칭과 뚜렷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선관위 관계자는 “민주당의 사용 불허 요구도 고려했지만 동일 단어가 들어간다고 해서 ‘뚜렷하게 구별되지 않는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비례민주당 당명에 ‘민주당’이란 단어가 들어갔다고 해서 ‘더불어민주당’의 유사명칭으로 보기 어렵다는 뜻이다.

'공직선거법 개정안' 투표가 예정된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이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육탄저지를 뚫고 의장석에 착석한 뒤 물을 마시며 한숨을 돌리고 있다. [연합뉴스]

'공직선거법 개정안' 투표가 예정된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이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육탄저지를 뚫고 의장석에 착석한 뒤 물을 마시며 한숨을 돌리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로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원외 ‘민주당’과 ‘더불어민주당’ 사이에 비슷한 논란이 벌어진 적이 있다. 당시 서울 남부지법은 두 정당에 명칭에 대해 “역대 정당 당명에 ‘민주’라는 단어가 줄곧 사용되어 왔고 공존하기도 했다”며 유사명칭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선관위는 다만 비례민주당 창당준비위원회가 중앙당 등록 신청을 할 때는 유사당명에 대한 해석이 바뀔 수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정당 등록을 위해선 ▶창준위 결성 공고 ▶ 5개 이상 시·도당 창준위 결성 ▶ 중앙당 등록 신청의 절차를 거치는데 현재 비례민주당은 첫 번째 단계만 넘은 상태다.

선관위 관계자는 "창준위와 정당은 법적 지위가 다소 달라서 비례민주당의 중앙당 등록신청이 들어오면 유사 당명에 대한 판례와 정당 취지를 중앙선관위 전체회의에서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안이 지난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비례대표 47석 중 30석에 50% 연동률이 적용된다. 그렇게 되면 지역구 의석수가 많은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비례대표를 한 석도 가져가지 못할 공산이 크다. 때문에 한국당은 벌써 비례 위성정당을 만들어 비례대표 의석도 챙기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한 상태다. 그러자 민주당에서도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여권 관계자는 “한국당이 비례 위성정당을 만들어 총선에 나선다면 민주당도 어쩔 수 없이 ‘비례민주당’을 만들어 의석수 확보를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치개혁을 위한 선거법 개정이라는 취지에 어긋나지만 선거에서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논리다.

공수처법에 대한 필리버스터 첫번째 주자로 나온 김재경 한국당 의원은 지난 27일 “제가 틀리면 장을 지진다. 결국 민주당은 비례민주당을 만든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민주당 마저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만들 경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 효과는 대부분 사라진다. “이럴 거면 뭣하러 육탄전을 감수하면서 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냐”는 거센 비판 여론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정의당 등 군소 야당들도 펄쩍 뛸 게 뻔하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민주당의 딜레마다.

김효성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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