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죽은' 유전·광산까지 살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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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광산은 약 2.5억~3억t의 철광석이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산됐지만 철 함유량이 낮아 경제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됐고, 1991년 운영 부진으로 문을 닫았던 곳이다.

회사는 바로 이 광산을 인수해 다시 철광석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올 4월 6만2500t의 철광석이 생산돼 해외에 팔렸다. 철광석 가격의 고공행진이 중남미의 죽은 광산마저 살려내는 괴력을 발휘한 셈이다. 철광석뿐 아니라 구리와 아연 등 비철금속 가격이 사상 최고가 경신을 이어가면서 일본도 남미시장 투자에 적극적이다. 일본 미쓰이는 페루 아연 광산을 확보했고, 스미토모는 칠레의 구리 광산에 2500만 달러를 투자했다.

닛폰 마이닝은 칠레의 구리 광산에 1억3700만 달러를 투자해 지분 전체를 사들였다. 중국도 올 들어 중국동공사(찰코)가 브라질의 알루미늄 광산에 10억 달러를, 중국 민메탈스는 칠레의 구리 광산에 5억5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중국석유천연가스총공사(CNPC)는 베네수엘라 동부에 고갈돼 가는 유전 15개에 4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남미의 굵직한 대형 자원 프로젝트에 일본과 중국 바람이 거셌다. 해외 자원을 확보하려는 전장에 이제 막 뛰어든 한국 앞에는 일본.중국이라는 안데스 산맥만큼 높은 벽이 있었다.

#상황 1="연배도 저보다 훨씬 많으시니 앞으로는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지난달 23일(이하 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국-아르헨티나 자원협력위원회 오찬 자리에서 한국 수석대표인 김신종(56) 산업자원부 에너지자원정책본부장이 일어나 아르헨티나 측 대표인 미겔 게레라 연방기획부 광업차관보를 향해 한 말이다. 게레라 차관보는 60대 초반이다. 현지 통역의 스페인어가 전해지자 좌중엔 폭소가 터졌다. 아무래도 자원 강국인 아르헨티나에 자원 빈국인 한국이 아쉬운 소리를 할 수밖에 없는 자리였다. 한국은 상대방의 마음을 사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전날 만찬장에서는 월드컵 분위기에 맞춰 아르헨티나를 '전통의 축구 강국'으로 치켜세워 상대방을 흐뭇하게 만들었다.

안쓰러운 장면도 있었다. 아르헨티나.멕시코에서 한국 측이 희망했던 관련 부처 장관과의 면담은 현지 정부 사정으로 불발됐다. 현지 통역사도 손님인 한국 측이 준비해야 했다.

특히 멕시코에서는 더 서운한 대접도 감수해야 했다. 한국 측이 두 차례나 식사를 대접했지만 멕시코 측은 한국 대표단을 한 번도 초대하지 않았다. 김 본부장은 "작은 것에 휘둘리지 말고 길고 멀리 봐야 한다"며 "자원 강국의 고위 관료와 따뜻하게 손 한번 마주잡고 얼굴을 맞대면 나중에 언젠가는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상황 2=자원협력위 한국 대표단이 귀국길에 오른 6월 28일, 또 다른 한국 대표단은 멕시코시티의 한 호텔에서 한국의 행정기관에 접목된 최신 정보기술(IT)을 자랑스레 선보였다. 수십 명의 멕시코 정부 관리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한국 측의 설명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문득 '저런 눈빛을 자원협력위에서 볼 수는 없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 행사의 주최 측에 자원협력위와 e-거번먼트 행사를 함께 묶을 수 없었는지 물었다.

주최 측은 "관련 부처가 서로 다르고, 행사의 성격도 차이가 있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멕시코시티=특별취재팀

◆ 특별취재팀 : 아프리카=권혁주 기자, 중남미=서경호 기자, 유럽.중앙아시아=심재우 기자, 캐나다=임미진 기자(이상 경제부문), 호주=조민근 기자(국제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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