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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학부모 수행평가에 불만 "모둠 평가 폐지, 성적 비중 줄여야"

중앙일보

입력

교육부가 ‘학교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지침’ 개정안을 행정예고함에 따라 내년부터는 모든 수행평가를 학교에서 진행하게 됐다. 강원도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준비하는 모습. [연합뉴스]

교육부가 ‘학교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지침’ 개정안을 행정예고함에 따라 내년부터는 모든 수행평가를 학교에서 진행하게 됐다. 강원도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준비하는 모습. [연합뉴스]

중3 딸을 키우는 서모(48‧서울 노원구)씨는 최근 딸의 학교 수행평가를 돕느라 애를 먹었다. 5명이 한조가 돼 10분 분량의 영화를 제작하는 게 과제였다.

하지만 딸과 달리 같은 팀 학생들은 그다지 열심히 준비하지 않았다. 대본 작성, 촬영‧편집을 위해 3~4번은 만나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대부분 학원 등을 이유로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결국 단 두 명이 영상을 제작해야 했고, 서씨가 도울 수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과제는 완성했지만, 서씨의 딸과 제대로 기여하지 않은 팀원 모두 같은 점수를 받았다. 교사에게 상황을 알릴까 하다 그만뒀다는 서씨는 "예전에 딸이 사실대로 말했다가 '협동심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점수가 깎였다"며 “과정을 평가한다는 수행평가의 취지야 이해하지만, 열심히 노력한 학생이 손해를 보는 모둠 평가라도 없앴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근 교육부가 내년부터 '부모 과제'란 비판을 받던 ‘과제형 수행평가’를 폐지한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학생‧학부모 사이에선 “수행평가의 전면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여전히 높다. ‘깜깜이‧불공정’ 평가라는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교육부가 ‘학교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지침’ 개정안을 행정예고함에 따라 내년부터는 모든 수행평가를 학교에서 진행하게 됐다. 학생들이 카페에 모여 조별 수행평가 관련해 논의하는 모습. [중앙포토]

교육부가 ‘학교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지침’ 개정안을 행정예고함에 따라 내년부터는 모든 수행평가를 학교에서 진행하게 됐다. 학생들이 카페에 모여 조별 수행평가 관련해 논의하는 모습. [중앙포토]

과제형 수행평가는 정규 수업 때 마무리할 수 없는 활동이나 과제를 교사들이 숙제처럼 내주는 것을 뜻한다. 집에서 하는 형태라 학부모·사교육이 개입할 여지가 있어 논란이 많았다. 이에 교육부는 ‘학교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지침’ 개정안을 행정예고 하면서 수행평가를 ‘교과 수업시간에’ 이뤄지는 활동으로 한정했다. 내년 1학기부터 과제형 수행평가는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현행 수행평가를 전면 개선하길 원한다. 수행평가는 시험 방식의 지필고사와 달리 학생의 성취 과정을 평가하는 장점이 있지만, 교사의 주관이 개입될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학생·학부모 사이에선 교사가 평가 기준, 감점 이유 등을 제대로 설명 안 해 답답하단 불만이 높다.

중1 자녀를 둔 김모(48‧서울 양천구)씨도 “아이가 새벽까지 수행평가를 준비해 가도 항상 이유도 모른 채 낮은 점수를 받는다”며 “교사에게 이의제기하고 싶어도 되레 불이익을 받을까 봐 참고 있는데, 고등학교도 이럴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학생들의 성취 과정을 다면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올해부터 수행평가 등 평가 비중을 50%로 확대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지난 6월 1주년 성과와 향후 3년의 비전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서울시교육청은 학생들의 성취 과정을 다면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올해부터 수행평가 등 평가 비중을 50%로 확대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지난 6월 1주년 성과와 향후 3년의 비전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여러 학생이 함께 준비하는 모둠 방식의 수행평가에 대한 불만도 많다. 본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열의 없이 ‘무임승차’하려는 학생과 함께 모둠이 되면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는 점 때문이다.

서울의 한 일반고 2학년에 재학 중인 이모(17)양은 “실험보고서 작성 같은 수행평가를 준비하느라 밤을 새우는 일이 잦은데, 5~6명이 조를 짜서 수행평가를 하면 그중 1~2명은 아무것도 안 하고 점수를 받는다”며 “그런 애들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간다고 생각하면 정말 억울하다”고 말했다.

교사 사이에서도 수행평가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6월 한 교사가 국민청원에 수행평가 축소하라는 청원을 올렸다. “학생이 과도한 수행평가 준비로 인해 학교에서 혼수상태로 생활할 정도”라고 주장했다.

서울 강북의 한 일반고 교장은 “과제형 수행평가가 사라지면 학교 수업에만 수행평가를 해야 해 교사의 부담도 커진다”며 “현재 서울 등에선 수행평가 같은 과정 중심 평가가 50%를 차지하는데, 적어도 30~40%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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