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조백일장7월] "지난달 냈다 떨어졌는데 … 어떻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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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장원작이 바로 지난달 응모작이었다. 전화로 당선 소식을 전했더니 대번에 "저번 달에 떨어졌는데요?"라고 되물어왔다. 그러나 떨어진 게 아니라 늦은 것이었다. 찬찬히 자초지종을 설명해준 뒤에야, 7월 당선자는 자신의 당선을 사실로 받아들였다. 제주에 사는 강현수(35.사진)씨였다. 아홉 살짜리 딸을 둔 주부이자 제주도청 복지청소년과에 근무하는 지방공무원이다.

강씨가 시조 학습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지난해 12월 시조모임 '정드리문학회'에 가입하고서다. 매주 금요일 그는 동료와 함께 시조를 공부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시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시조를 접하면 접할수록 "자유시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품격과 더 깊은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 올 2월 서귀포에서 열린 백일장에서 시조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내친김에 용기를 내 4월 중앙 시조백일장에 원고를 보냈지만 낙방했다. 이번이 두 번째 응모다.

강씨는 차분하게 자신의 작품을 설명했다. 시조를 배운 기간이 짧아 당선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고 답했지만, 작품을 설명하는 자세는 제법 의젓하고 여유가 있었다.

장원작은 지난달 경북 청도를 여행했을 때의 감상을 옮긴 것이다. 시적 자아를 상징하는 제주 바다에서 놀던 바람이 헐티재 넘고 비슬산 넘어 우포늪도 가고 청도반시도 맛본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시상(詩想)이 전개된다.

심사위원이 칭찬했던 것도 바로 그 노련함과 세련함이었다.

손민호 기자



시공 넘나드는 시상, 바람처럼 자연스러워

이번 달 장원의 영예를 차지한 '늪물 뱉는 뻐꾸기'는 제목부터 눈길을 끈다. 뻐꾸기는 분명히 소리를 뱉는다. 그런데 '늪물을 뱉는'다고 썼다. 어떤 측면에서는 제목에서 지나치게 기교를 부린 점이 있다. 그러나 세 수 한 편이 적절한 균형추를 잡고 있다.

이 작품은 시공(時空)을 넘나든다. '제주 바당('바다'의 제주 사투리) 놀던 바람'이 비슬산 자락을 품은 경북 청도까지 이르러서 한 감나무에 앉는다. 시점(視點)은 또다시 이동하여 경남 창녕 우포늪으로 옮겨진다. 거기서 뻐꾸기가 '초여름 갈맷빛 늪물, 한정 없이 뱉어내'는 것을 목격한다. 다시 한번 시점은 옮겨가서 '꼭지째 말라버린 청도반시 그 맛'을 보며 '서귀포 변두리 마을 훔쳐 먹던 절밥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연스레 시상이 이어지고 있다. 셋째 수 종장에 와서 '때 되면 뻐꾸기시계 얼핏 뵈는 저 비구니'로 마무리 지은 점도 인상적이다.

차상으로 뽑힌 '실뿌리'는 시종일관 같은 톤을 유지하고 있다. 셋째 수 후반부의 '폭풍우 견딜 줄 아는 백일홍 보듬어서/마실 잠 맛들인 멧새/둥지 틀어 잠재운다'는 표현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자연물을 향한 애정 어린 시선이 빚은 대목이다. 그러나 첫째 수와 둘째 수 초장에서 행갈이를 바꾼 의미를 응모자는 깊이 헤아리길 바란다. 의미 없는 행갈이는 오히려 작품의 집중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 차하인 '만연사 가는 길'은 단시조로서 적절한 연행(聯行) 구분을 통해 의도한 바를 잘 표출하고 있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시조의 기본 형식에 대한 공부를 철저히 할 것을 응모자들에게 다시 한번 당부하고 싶다. 정형률(定型律)을 익혀 형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작품들을 응모해 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형식을 익힌 다음에는 대상을 늘 새롭게 보려고 애써야 한다. 쓰다가 어딘가 낯익다 싶거나, 누군가가 이미 노래한 구절이나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면 과감하게 버리고 다시 시작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럴 때 진정한 창조는 이루어진다.

형식을 지키되 형식에 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초보자에게는 무척 어려운 말이다-을 얻는다면 한결 드높은 시적 성취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이 이중의 짐이 되지만, 잘만하면 더 없는 완결의 미학에 이르게 된다는 점에서 크나큰 매력이 되기도 한다.

<심사위원:이한성.이정환>



◆응모안내=매달 20일쯤까지 접수된 응모작을 심사, 월말에 발표합니다. 응모 편수는 제한이 없습니다. 해마다 매월 장원과 차상.차하에 뽑힌 분들을 대상으로 12월 연말장원을 가립니다. 연말장원은 중앙 신인문학상 시조 부문 당선자(등단자격 부여)의 영광을 차지합니다. 매월 장원.차상.차하 당선자들에겐 각각 10만.7만.5만원의 원고료와 함께 '중앙 시조대상 수상작품집'(책만드는집)을 보내드립니다.

▶보내실 곳=서울 중구 순화동 7번지 중앙일보 편집국 문화부 중앙 시조백일장 담당자 앞(우:100-759), 전화번호를 꼭 적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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