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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품격 글로 쓴 마음 풍경 “철학은 신나는 모험·여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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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6호 27면

심리철학 세계적 석학 김재권 1934~2019

2014년 서울 종로구에 있는 두가헌에서 토론하고 있는 고(故) 김재권 교수(왼쪽)와 김기현 서울대 철학과 교수. 오종택 기자

2014년 서울 종로구에 있는 두가헌에서 토론하고 있는 고(故) 김재권 교수(왼쪽)와 김기현 서울대 철학과 교수. 오종택 기자

“은퇴는 자유와 해방감을 안겨주었다. 학교에서 가르칠 때는 일요일만 해도 월요일 수업 준비를 해야 했다. 은퇴 후 생활은 토요일이 매일 계속되는 것과 같다. 특히 젊은 시절처럼 읽고 싶은 문학 작품과 시를 읽을 수 있어서 좋다.” 철학자 김재권(1934~2019)이 2014년에 한 말이다.

서울대 다니다 1955년 미 유학 #문필가 꿈 접고 “생존 위해 철학” #마음·몸 다루는 심리철학 등 유명 #평생 천진난만하던 영원한 소년

영면(永眠)은 영원하고도 진정한 안식(安息)의 세계다. 출근할 일도 수업준비 걱정할 일도 자식 걱정할 일도 돈 걱정할 일도 정치나 나라 걱정할 일도 없다.

인공지능(AI) 시대의 도래를 앞둔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숙제 중 하나는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사실 석기시대나 청동기 시대나 르네상스 시대나…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항상 중요했다.) 마음은 자연과학·공학뿐만 아니라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이 함께 풀어야 할 거대한 미스터리다. 이 문제를 푸는 데 ‘마음 분야’ 최고의 철학자인 김재권 교수를 빠트릴 수 없다. 그의 업적은 앞으로 더욱 중시될 것이다.

『심리철학』『수반과 마음』 등 명저 남겨  

김재권 교수의 대표작인 『심리철학』의 영문판 표지. 미국 대학에서 교과서로 활용되고 있다.

김재권 교수의 대표작인 『심리철학』의 영문판 표지. 미국 대학에서 교과서로 활용되고 있다.

지난달 27일 김재권 브라운대 명예 석좌교수가 별세했다. 향년 85세. 그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철학자다. 심리철학·인식론·형이상학 분야에서 손꼽히는 학자였다. 마음의 문제, 마음과 몸의 관계를 다루는 심리철학 분야에서 명실상부한 세계적 대가였다.

내용도 탁월했지만, 내용을 전달하는 김재권 교수의 글쓰기 방식도 뛰어났다. 미국의 철학자들이 그의 논문과 책을 철학적 글쓰기의 모범으로 추천할 정도였다. 수려하고도 명료한 고품격 문체로 유명하다.

1934년 경상북도 대구에서 출생한 김재권 브라운대 명예 석좌교수는 서울대 문리대에 수석으로 입학해 2학년 재학 중이던 1955년 한·미장학위원회 장학생으로 선발됐다. 미국 다트머스대에서 불문학·철학·수학 연계 전공으로 1958년 학사 학위를 받았다. 1962년 프린스턴대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스워스모어·코넬·미시간·브라운 등 쟁쟁한 세칭 명문대에서 가르쳤다. 미국철학회 중부지역 회장(1988~89)으로 일했다. 저서로는 『심리철학』(1996), 『수반과 마음』(1993), 『물리계 내에서의 마음』(1998) 등이 있다. 특히 『심리철학』은 이 분야의 교과서다.

평생 천진난만한 초등학생이나 청소년처럼 살았던 철학자 김재권의 원래 꿈은 문필가였다. 우연히 조지 마이로라는 선배를 만나 실존주의에 관해 토론했는데 처절하게 졌다. 김 교수는 “생존을 위해” 철학도가 됐다. “증거에 따라 중요한 문제를 진지하게 탐구하는 철학”에 이끌린 게 아마도 보다 본질적인 전공을 바꾼 이유였다.

사람은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 조지 마이로가 김재권 교수에게 귀인(貴人)이었다면, 김 교수가 프린스턴대 박사과정에서 만난 카를 헴펠(1905~97) 교수도 귀인이었다. 헴펠 교수는 김재권 학생에게 놀라운 철학자, 놀라운 사람이었다. 지극히 겸손하기도 한 전형적인 유럽 신사였다.

“명상하면 아이디어가 절로? 멍청한 말”  

김재권 교수가 남긴 ‘말말말’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철학자로서 들어본 가장 멍청한 말은 철학자들이 눈을 감고 명상을 하면 온갖 종류의 아이디어가 저절로 샘솟는다는 것이다. 철학자들도 열심히 노력한다.”

-“철학이 과학보다 높은 곳에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반대로 철학이 과학의 시녀라는 인식도 있다. 두 관점 모두 어떤 면에서는 철학을 지적인 활동으로부터 분리한다고 본다. 양쪽 다 어느 정도 진실을 담고 있겠지만, 현실을 왜곡한다고 본다.”

-“무슨 일이건 어느 정도의 지능이 필요할 뿐이다. 철학이라고 해서 다른 분야보다 머리가 더 좋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50년 동안 철학을 연구하고 가르쳤다. 그 결과 내가 내린 결론은 철학이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철학이라는 게 있어서 너무 기쁘다. 또 내가 철학에 몸담을 수 있었다는 게 기쁘다. 철학은 인간에게 멋지고 신나는 모험이요 여정이다.”

김재권 교수가 남긴 삶의 추억과 업적에 대해 서울대 철학과 김기현 교수가 중앙SUNDAY에 기고문을 보내왔다. 김 교수의 연구 분야는 심리철학·분석철학·현대인식론 등이다. 김 교수는 한국분석철학회장, 한국인지과학회장으로 일했다. 저서로는 『현대인식론』 등이 있다.

일류 철학자보다 이류 음악가 되고 싶다던 지성인 김재권

필자와 내자가 노년의 세계적 철학자 김재권 교수 부부와 그의 집에서 담소를 나눌 때였다. 철학적 일상으로부터 일탈한 노철학자는 음악전공자인 필자의 아내와 작곡가, 연주자들에 관한 이야기에 열정적으로 몰두하고 있었다. 철학을 논할 때 보던 그의 냉담하고도 초연한 지성과 너무 달라 호기심이 발동했다. “선생님께서는 일류 철학자와 이류 음악가 중에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뜻밖의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물론 이류 음악가지요.” 철학의 세계에서 대가의 반열에 이미 오른 가진 자의 사치라고 치부하려는데 그의 특이한 삶의 여정이 마음에 걸린다.

대구에 대한 소년 김재권의 기억에는 찌는 듯한 더위에 비포장도로 위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덜컹거리는 고물 트럭이 뿌리는 먼지, 전쟁 직후의 상실과 무료함이 가운데 놓여 있다. 달리 할 일이 없어 영문학·불문학을 독학으로 공부한 소년은 시인이 되겠다는 꿈을 꾸며 서울대 불문과에 문리대 수석으로 입학한다. 입학한 지 채 2년도 안 되어 거의 반강제로 미국 국무부 장학금을 받고 당시에는 들어보지도 못한 다트머스대학에 유학을 떠난다. 조만간 파리로 옮겨 센 강변에 있는 다락방에 기거하며 시를 쓰겠다는 낭만적인 꿈을 버리지 않은 채.

삶의 전환점은 우연히 찾아오기도 한다. 청년 김재권은 철학을 전공한 한 친구와 실존주의에 대한 논쟁을 벌이게 된다. 이 논쟁에서 ‘자신의 주장이 조목조목 비판을 받으면서’ (그 자신의 표현이다) 나름 프랑스 문학과 철학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김재권의 지성은 상처를 받고 철학으로 관심이 향한다. 이후 프린스턴대학에서 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그의 삶은 탄탄대로를 걷는다. 코넬대학과 스워스모어칼리지에서 단기간 봉직한 후 대부분의 경력을 미시간대학(20년)과 브라운대학(28년)에서 보내며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긴다. 과학의 본성에 대한 탐구에서 철학계의 주목을 받은 김재권은 그의 관심을 점차 마음과 물질과의 관계로 확대해 갔다.

인간의 삶이 관습에 지배되듯이, 학문에도 무엇이 문제이며, 이 문제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관습이 있다. 김재권은 이 틀을 넘어서 대가의 반열에 오른다. 과학에서 가정하는 사건 개념이 모호함을 깨닫고 자신만의 이론을 제시하면서 ‘사건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철학의 주요 문제로 만들었다. 또한 그는 마음과 뇌를 ‘수반(supervenience)’이라는 관계를 통하여 이해하는데, 이 개념은 철학의 다양한 분야뿐 아니라 타 학문 분야에서도 널리 활용되며 학문의 발전에 폭넓게 기여하게 된다.

필자의 유학시절이 생각난다. 미국으로 철학 공부하러 가는 한국인이 많지 않던 시절 동학들과 교수들은 내가 한국인임을 알고서는 김재권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미시간대학에서 김재권과 오랜 동료이면서 책도 함께 집필했던 철학자가 필자의 지도교수여서 김재권의 존재감은 더 크게 느껴졌다. 그의 학문적 명성은 공공연한 것이라 별로 놀랄 일은 아니었고 이런 일들은 유쾌한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놀라운 일은 그들이 글쓰기의 모범으로 김재권을 거론한다는 점이었다. 김재권의 글에 대한 찬사는 필자가 미국에서 교수 생활을 할 때까지 이어져 학계의 공통된 의견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깊은 내용을 어렵지 않게, 선명하면서도 유려하게 표현하는 그의 문장이 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었다. 소년 시절부터 쌓아 온 문학적 소양이 철학적 지성을 만나 보답하고 있었다.

5년 전 브라운대학에서 퇴직하며 김재권은 시와 음악으로 여생을 보내겠노라 생각하고 일체의 철학 학술 발표나 저술 초청을 사양했다. 그 무렵 필자가 보낸 한국 시집에 기대 이상으로 기뻐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시·문학·예술에 대한 사랑으로 시작하여, 철학으로 세상에 기여하고, 다시 예술을 즐기던 김재권이 11월 27일 향년 85세를 일기로 세계 지성계에 족적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났다. 한국인으로서 철학, 인문학, 더 나아가 학문 세계 전체에서 이만한 업적을 남긴 경우를 찾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철학인들은 여유가 있을 때마다 고국을 찾아 철학계에 활력을 불어 넣어준 빛나는 지성 김재권을, 또 겸손하며 온유한 모습의 인간 김재권을 감사와 존경의 마음으로 오래 기억할 것이다.

김기현 서울대 교수

김환영 대기자 / 중앙콘텐트랩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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