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적신호 이미 켜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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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물가 오름세가 우려할만한 수준에 육박하고 있다. 9월중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 9%로 연율 10%를 웃돌았고 도매물가 역시 0·6%라는 큰 폭의 오름세를 보였다.
9월중의 물가상승은 일부 농수산물의 공급부족과 전세· 월세의 상승에 의해 주도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써 금년 1월부터 9월까지 소비자 물가는 4·7%나 올라 5%로 잡힌 금년도 물가억제목표는 달성할 수 없음이 분명해졌다. 수출부진, 경기침체, 국제수지 악화, 투자저조, 과소비 등 온갖 악재가 동시 다발적으로 표출되는 가운데 경제안정의 마지막 보루인 물가안정마저 크게 흔들린다면 이미 위기의 징후들로 가득 찬 우리 경제는 파국으로의 적신호가 켜졌다고 봐야할 것이다.
9월중의 물가앙등이 구조적이라기보다는 주로 일시적인 요인에 의해 촉발되었고, 또 오름세의 폭이 지난 5월의 1·3%보다는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고 해서 결코 물가문제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되며 이 단계에서 물가당국은 우리 경제구조에 내재해 있는 물가상승요인들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면서 만반의 대책을 때 놓치지 말고 시행해 줄 것을 당부한다.
한꺼번에 터진 여러 갈래의 경제적 난제들과 씨름해온 정책 당국의 노고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최근 수개월간 정부의 물가안정 노력에 소홀한 흔적이 있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불과 1백 여일 전 금년도 하반기 경제종합대책을 발표할 때 정부는 「안정기조의 공고화」를 위해 세계잉여금을 우선적으로 한은 차입금상환에 쓰겠다고 약속했고, 국민들은 그것을 현명한 결정으로 받아들였다. 그후 얼마 안가 정부는 내년도의 기록적인 예산증가를 발표하면서 내년도에는 세계잉여금을 복지지출에 사용하겠다고 밝히고 적자재정이 아닌 만큼 그것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중립적이라고 강변했다.
안정기조를 다지는 재정운용상의 노력이 금년 하반기에는 물론 내년에도 계속 필요하다는 것과 흑자재정이 균형재정보다 물가안정에 더 유익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정부당국이 양자간의 차이를 얼버무리려 했다든가 안정기조강화 노력에 일관성을 살리지 못한 사실은 실로 개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물가안정을 위해 과소비를 억제하고 농산물가격의 등락 폭을 최소화하겠다는 정부의 시책은 6월의 종합경제대책 발표 때와 추석직전은 물론 그밖에도 기회 있을 때마다 거듭 천명되어왔다.
따라서 9월 물가앙등의 원인을 보면 바로 그 시책이 실효를 거두지 못했음을 여실히 일 수 있다.
물가가 한번 크게 요동치면 그야말로 힘겹게 추진하고 있는 분배의 형평, 복지 증진의 제반시책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만다. 가뜩이나 손상된 우리 산업의 대외 경쟁력이 받을 피해 또한 엄청나게 클 것이다.
물가안정은 물론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이룩되지 않는다. 정치인의 각성에 의한 정치안정, 소비자들의 합리적 소비 행위, 기업의 생산성 향상, 근로자들의 자제 등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활력의 회복을 위해 몸부림치는 우리 경제에 악성 인플레는 최후의 치명타가 될 수 있음을 국민 모두가 명심해야할 때다. 그리고 정부는 안정기조 유지를 위한 정부의 의지가 확고하다는 것을 언행일치의 일관된 실천으로 증명해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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