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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12억 피해에 보상은 3억" 8개월째 빚내 생활비 쓰는 이재민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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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지난 4월 발생한 강원 고성·속초 산불 당시 발화지점에서 500여m 떨어진 속초시 노학동에 있는 송지헌(41)씨가 운영하는 식당이 불에 탄 모습. [사진 송지헌씨 제공]

지난 4월 발생한 강원 고성·속초 산불 당시 발화지점에서 500여m 떨어진 속초시 노학동에 있는 송지헌(41)씨가 운영하는 식당이 불에 탄 모습. [사진 송지헌씨 제공]

“산불에 탄 건 12억원인데 보상은 3억원밖에 못 받는다니…. 8개월째 일 못 한 건 누구한테 보상받아야 하나요.” 지난 4월 발생한 고성·속초 산불 발화지점에서 500여m 떨어진 강원 속초시 노학동에서 부모님과 식당을 운영하는 송지헌(41)씨는 벌써 8개월째 식당 운영을 못 하고 있다.

8개월째 식당 운영 못해 대출금으로 생활 #월급 지급할 수 없어 직원들 내보내기도

송씨의 경우 당시 산불로 237㎡ 규모의 식당과 컨테이너 5동이 모두 불에 탔다. 피해액만 12억원이 넘는데 보상을 받지 못해 식당 운영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최근 새로운 식당 건물을 짓기 위해 7억원의 대출을 받았다. 벌이가 없다 보니 이 중 일부를 생활비로 충당하고 있다.

송씨는 ”소상공인의 경우 2차 피해가 더 심각한데 그에 대한 배상이 없는 상황이라 대출금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며 “피해액은 12억원인데 손해사정 실사 확정액이 4억7000만원, 여기에 60% 보상 요율을 적용하면 최종 보상금은 3억원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지난 4월 강원 동해안 일원에서 발생한 대형산불과 관련된 이재민 4개 단체 회원들이 지난 16일 오후 춘천시 후평동 한국전력공사 강원본부를 찾아 가스통을 실은 차량과 함께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월 강원 동해안 일원에서 발생한 대형산불과 관련된 이재민 4개 단체 회원들이 지난 16일 오후 춘천시 후평동 한국전력공사 강원본부를 찾아 가스통을 실은 차량과 함께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산불 피해 소상공인들 8개월째 수입 ‘0’원 

고성·속초 산불이 발생한 지 8개월이 지났지만, 보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서 2차 피해가 심각한 상황이다. 속초 장천마을에서 소방용 안전충전함 등 금속 제조 업체를 운영하는 김경혁(48)씨 역시 8개월째 업체 수입이 ‘0’원이다. 산불로 264㎡의 규모의 공장과 납품을 앞둔 충전함 30대, 장비 등이 모두 불에 탔다. 피해액만 5억원에 달한다.

더욱이 이 업체에서 일해 온 일용직 근로자를 포함해 총 6명의 직원 중 5명은 산불로 직장까지 잃었다. 고성속초산불피해소송대책위원회 대책위원장인 김씨는 “보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8개월 넘게 수입이 없다 보니 직원들 월급을 줄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내보냈다”며 “남은 1명 직원은 다른 일을 해 번 돈으로 기본급을 주며 어렵게 버티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전에서 선임한 손해사정사가 피해 규모의 절반이 넘는 감가상각을 해놓고 한전 측이 60%로 보상 요율을 정해놓으니 5억원 정도 피해를 본 사람이 1억원이 조금 넘는 보상을 받게 되는 어이없는 상황”이라며 “특히 중소상공인의 경우 영업적인 손실마저 큰 상황인데 현실적인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4월 강원 동해안 일원에서 발생한 대형산불과 관련된 이재민 4개 단체 회원들이 16일 오후 춘천시 후평동 한국전력공사 강원본부를 찾아 사각지대 이재민들의 합당한 보상을 요구했다. 한 이재민 대표(오른쪽)가 한전 산불피해현장지원단 관계자에게 주민들의 입장을 담은 요청서를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월 강원 동해안 일원에서 발생한 대형산불과 관련된 이재민 4개 단체 회원들이 16일 오후 춘천시 후평동 한국전력공사 강원본부를 찾아 사각지대 이재민들의 합당한 보상을 요구했다. 한 이재민 대표(오른쪽)가 한전 산불피해현장지원단 관계자에게 주민들의 입장을 담은 요청서를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객과 거래처 붕괴로 재기 어려운 상황

이에 따라 주택 이재민 외 이재민들로 구성된 4개 단체가 한국전력공사에 비주택 피해민 대상 별도 협상과 합당한 보상 요율 적용을 요구하고 나섰다. 중소상공인과 비영리법인 등으로 구성된 4개 연합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16일 춘천시 후평동 한전 강원본부를 찾아 사각지대 비영리법인과 무등록사업자 보상안, 주택 피해민과 비주택 피해민 별도 협상, 비주택의 영업적 손해배상 별도 보상 등을 요구했다.

이들은 “주택 이재민 외 산불피해 이재민은 한전과 정부로부터 소외돼왔으며, 한전에서 선임한 손해사정사가 피해 신고금액의 70%에 육박하는 감가상각률을 적용하면서 이재민들이 복구 불능 상태로 내몰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조상 대대로 내려온 가보와 조상 사진, 유명화가 그림, 고가의 보석은 가치를 측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0원’인 데다 영업장이 복구되더라도 수십년간 확보한 고객과 거래처가 붕괴해 재기가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이날 산불 관련 한전의 피해 보상 범위와 금액을 심의·의결하는 특별심의위원회에 비주택 협의체 구성과 재협상 추진, 비주택 피해민의 영업적 손해배상 요율 별도 인정 등 내용을 담은 요청서를 전달했다.

이와 별도로 이날 한전 강원본부에서 열린 8차 특별심의위원회에선 한전과 고성한전발화산불피해이재민비상대책위원회가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해 사실상 최종 협상이 결렬됐다. 한전 측은 손해사정사의 실사를 통한 총 피해 금액의 60% 보상을 제시했지만, 비대위는 한전의 책임을 물으며 100% 보상을 요구해 양측은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속초=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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