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미숙한 '원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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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노무현 대통령이 3일 청와대 기자실을 찾아 송두율씨 문제에 대해 한 발언은 모호하다.

盧대통령은 '원칙대로 처리할 것'이란 말과 '원숙하게 처리하자'는 말을 함께했다. 국법에 따라 조사할 것은 조사하고 처벌할 것은 처벌하자는 원칙론에 대해선 이의를 달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원숙한 처리'를 덧붙이면서 해석에 혼선이 생겼다.

그는 "송두율 교수 같은 사람들은 분단 체제 속에서 생산된 것" "이런 것을 가지고 건수 잡았다고 좋아할 일은 아니다"고 했다.

북한 노동당에 입당했고, 북한 권력서열 23위인 것이 국정원에서 확인됐으며, 스스로 노동당을 탈당하겠다는 입장도 밝히지 않았고, 이제 검찰이 간첩 혐의로 수사를 막 시작하려는 宋씨를 마치 '분단의 희생양'처럼 해석할 수 있게 한 발언은 듣는 이를 혼란스럽게 했다.

더구나 "건수 잡았다고 좋아할 일 아니다"는 언급은 겉으론 경계인, 속으론 노동당 중앙위원으로 행세하던 宋씨의 진실을 캐기 위해 수십년간 수사력을 집중해온 정보기관 입장에선 섭섭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盧대통령의 이런 발언이 인터넷 뉴스 등을 통해 전해지자 신문사엔 "도대체 이 문제를 놓고 건수 잡았다고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냐. 대통령은 누구를 향해 이런 말을 한 것이냐"고 분개하는 전화가 숱하게 걸려 왔다.

盧대통령은 물론 宋씨 문제가 정치적인 공방의 소재로 부상해 비생산적인 색깔 논쟁으로 옮아가는 것을 염려해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 다르고, 아 다르다'는 속담도 있다. '건수'라는 표현은 대통령에게 걸맞은 원숙한 어법이 아니다.

김성탁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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