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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뜩하고 장르적이고 허를 찌르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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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4호 21면

위험한 비유

위험한 비유

위험한 비유
최제훈 지음
문학과지성사

최제훈 소설집 『위험한 비유』

대개 빠지는 법이 없는 ‘작가의 말’, 없는 경우도 많지만 작가와 출판사가 친절하다면 붙인다고 해서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작품해설’이 이 소설집에는 없다. 작가 최제훈(46)씨가 9년 만에 펴낸 두 번째 소설집 『위험한 비유』의 무뚝뚝한 만듦새다. 고만고만한 길이의 단편 여덟 편만 소설책 앞·뒤 표지 사이에 고등어처럼 얌전히 쌓여 있다. 그러니까 작품 자체로만 승부하겠다는 얘기?

책 표지에 앉힌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초상화(The Portrait)’는 사실 섬뜩한 그림이다. 접시 위에 얇게 잘라놓은 고깃덩이 가운데 사람의 눈이 박혀 있다. 나를 보고 있나? 이런 느낌이다. 그림이 오히려 관람객을 쏘아보는 것 같다. 이 그림을 선택한 까닭은 뭘까.

소설집은 독자와 게임이라도 한판 벌이려는 것 같다. 소설에서 이런 걸 기대한다고? 이래도 안 읽을 텐가? 능란하게 읽는 이를 리드하며, 상투성을 깨뜨리는 깨알 같은 잔재미를 선사하며, 책장에 독자를 묶어둔다.

작가 최제훈. 9년 만에 SF 요소를 가미한 소설집 『위험한 비유』를 냈다. [사진 문학과지성사]

작가 최제훈. 9년 만에 SF 요소를 가미한 소설집 『위험한 비유』를 냈다. [사진 문학과지성사]

맨 앞에 배치한 단편 ‘철수와 영희의 바다’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이 작품은 어쩐지 평화로울 것 같지 않나. 철수와 영희. 국민 소년·소녀 이름을 한 연인이 바다를 찾는다. 파란 하늘, 뭉게뭉게 흰 구름이 자동연상된다. 소설 중간까지는 실제로 그렇다. 지루할 정도로 이렇다 할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 여름철 휴가 얘기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검푸른 바다도 중학생 때까지 수영선수여서 물개나 물고기 사촌쯤 되는 철수와 함께면 안심이다. 문제는 둘 사이가 틀어지는 경우다. 상상할 수 있는 최대치의 반전이 펼쳐진다.

최제훈씨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서울예대 문창과를 또 다녔다. 대학교 교직원 직장도 때려치웠다. 물론 소설에 전념하기 위해서다. 비교적 뒤늦게 등단해 2010년 첫 번째 소설집 『퀴르발 남작의 성』을 출간했고 이후 장편 세 권을 냈다. 소설집만 놓고 보면 SF적인 요소가 추가된 게 달라진 점이다. ‘2054년, 교통사고’, ‘위험한 비유’ 같은 작품이 SF 계열이다.

달라지지 않은 점은, 거칠게 표현하면 평범함을 거부한다는 점? 여덟 편 모두에 대해 그렇게 말해도 될 것 같다. 이런 판단의 사실 여부는 직접 따져 보시길. 물론 그러려면 읽어야 한다.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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