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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행위 방지’vs‘생리욕구 보장’…국가시험 중 화장실 써도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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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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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시험 등 국가 주관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들의 화장실 사용을 막아선 안 된다는 국가인권위원회 권고가 나왔다.

인권위는 18차 전원위원회를 열고 변호사시험과 국가기술자격시험을 보는 응시생들의 화장실 이용을 제한하는 건 인격권침해라며 시험을 운영하는 법무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공단)에 운영방법을 개선하라고 27일 권고했다.

인권위에 따르면 진정인 A씨는 지난 8월 90분간 진행된 국가기술자격시험 실기 시험에서 감독관에게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요청했으나 부정행위로 간주하겠다는 말과 함께 거부당했다. A씨는 결국 소변을 참느라 시험에 집중하지 못해 불합격했다고 주장했다. 150분간 진행된 품질경영기사 필기시험을 치른 또 다른 수험생 B씨도 화장실을 못 간 채 시험을 치르다가 결국 시험을 포기하고 화장실에 갔다.

변호사 시험을 봤던 진정인 C씨도 화장실 이용을 제한당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변호사 시험은 4일간(1일 휴식) 10과목을 치른다. 짧게는 1시간 10분, 길게는 3시간 30분 동안 시험을 본다. 시험 도중에는 화장실을 못 간다. 다만 2시간이 넘는 시험은 2시간이 지나면 화장실에 갈 수 있다.

법무부와 공단은 화장실 사용을 전면 허용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공단은 금속 탐지기로 부정행위에 쓰이는 전자통신기기는 막을 수 있지만, 메모지 등을 활용한 부정행위는 늘 것으로 예상하고 감독관 추가 배치로 예산·인력도 더 필요하다고 했다. 또 몸수색 과정에서 또 다른 인권침해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고도 했다. 이밖에도 현재 치르는 494개 시험 중 2시간이 넘게 걸리는 필기(65개)·실기(47개) 시험은 화장실 사용을 허용하고 있어 문제가 안 된다는 입장이다.

법무부는 다른 수험생의 집중에 방해가 된다며 반대한다. 또 임산부·장애인이나 과민성 대장·방광증후군 등 화장실 이용이 불가피한 수험생들은 별도 고사장을 마련해 화장실을 쓸 수 있게 해 문제가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인권위는 “(화장실 전면허용으로) 부정행위나 집중력 방해 등의 문제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면서도 “이런 우려가 중대한 사회문제가 된 적이 없고, 화장실을 허용한 시험에서 운영 문제가 생긴 적도 없다”는 입장이다. 이밖에 “생리적 욕구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로 헌법상 보호 가치가 상대적으로 크고 누구나 그 대상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용 제한하는 게 정당화될 수 없다”고 밝혔다.

김태호 기자 kim.tae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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