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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와 기자, 가깝고도 먼 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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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영호 변호사

문영호 변호사

기자가 불쑥 들어오면 가슴이 철렁했다. 출입 보안이 느슨하던 시절, 특수부 검사실에 밤늦게 불이 켜져 있으면 기자가 찾아왔다. 황급히 책상 위를 치우고 조사도 멈춘 채 불청객을 응대하느라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했다. 내사(內査) 단계인데도 눈치채고 한 줄 써 버리면 홍역을 치러야 했다. 보안 실패에 대해 질책받고 유출범을 색출하느라 소동을 벌였으니까. 보도를 접한 관련자들이 잠적하거나 입을 맞추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수사를 접은 적도 있지만, 어느 기자가 그걸 괘념하겠는가.

기자에게 시달리는 건 수사를 공개리에 할 때도 피할 수 없다. 오보나 추측성 보도 때문이다. 궁여지책으로 맺은 신사협정이 ‘수사 브리핑’ 이다. 일정 부분까지 쓰도록 풀어주는 게 터무니없는 오보를 막는 데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됐다. 특히 전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사건 수사에서 쓰임새가 있었다. 인권침해 우려가 있는 관행이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의존해 온 것은, 보도가 중구난방으로 튀고 나면 그걸 일일이 해명하느라 수사력이 분산되기 때문이다. 터무니없는 오보는 또 다른 인권침해를 낳고, 수사 종결 후 ‘축소수사’라고 욕먹게 만드는 주범이라는 점도 고려됐다.

법의길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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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와의 공생(共生)은 거기까지였다. 남보다 한끝이라도 더 캐내려는 취재 경쟁을 멈출 리 없으니까. 그런데 오보를 막기 위한 신경전이 벌어지는 한켠에서, 가끔 검사가 특정 기자와 유착해 꼼수를 쓰는 일이 벌어졌다. 수사 내용 일부를 슬쩍 흘려 보도되게 한 다음, 압박을 느낀 피의자에게서 수사 협조를 받아 내는 경우다. 외압이 있다고 폭로해 여론을 등에 업고 돌파구를 찾아내는 검사도 나왔다.

터무니없는 오보를 접할 때마다 해당 기자의 청사 출입을 영구히 막아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기도 했지만, 기껏해야 한두 달의 제한으로 끝냈다. 취재 자유를 빼앗는 게 언론 자유라는 헌법 가치를 건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자와의 음험한 유착으로 물을 흐려 놓는 일부 검사의 행태 때문에 수사내용을 기자에게 흘리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고 많은 사람들이 의심하게 된 건 안타까운 일이다. 더구나 기자 역시 꼼수를 쓰고 있으니, 그런 오해가 쉽게 풀리겠는가. 취재 내용에 대해 검사에게서 진위(眞僞) 확인 정도 받아놓고선 그걸 검찰발 기사로 둔갑시켰다. 조사받고 나온 참고인에게 들은 말을 취재원 보호 차원에서 ‘검찰 관계자’의 말로 포장했다. 검찰청 쓰레기 더미까지 뒤져 확보한 파지(破紙) 조각으로 퍼즐 맞추기 하는 집요한 기자도 많았다.

그런데 왜 기자를 멀리해선 안 된다고 선배 검사는 후배에게 가르쳤을까. 그들의 취재 활동이 자신들이 빠지기 쉬운 독선을 견제한다고 믿었던 거다. 권력 감시라는 언론 본분에 대한 신뢰도 깔려 있었으리라. 밀행(密行)으로 이루어지는 수사는, 외부의 감시가 없다면 인권 보호엔 소홀해질 수 있다.

최근 법무부가 피의사실 공표 시비를 줄이겠다고 나섰다. 그로 인해 검사와 기자 사이에 건강한 긴장 관계가 회복된다면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법무부의 일방적 주도에 언론이 반발하고 있다. 언론, 검찰, 민간 전문가들이 모여 대토론회를 열면 어떨까. 수사 관련 보도 수위를 얼마나 낮출지, 알 권리의 중독에서 국민들을 어떻게 벗어나게 할지 등이 논의되면 좋겠다. 대상이 고위공직자일 경우 알 권리란, 안다는 걸 넘어서 ‘감시’하겠다는 것 아닌가.

문영호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