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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NAS 위스키’ 가 걱정되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44)

‘대NAS’시대다. ‘NAS’란 ‘넌 에이징 스테이트먼트(None Aging Statement)’의 줄임말로, 숙성 기간을 표시하지 않는 위스키를 보통 ‘NAS 위스키’라 부른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위스키에 12년, 15년, 18년 같은 최소 숙성 기간 표기가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표기가 없는 NAS위스키가 우후죽순 쏟아지고 있다.

숙성 기간 표기가 없는 히비키 블렌더스 초이스. 히비키 17년이 단종되고 작년에 새롭게 출시됐다. [사진 김대영]

숙성 기간 표기가 없는 히비키 블렌더스 초이스. 히비키 17년이 단종되고 작년에 새롭게 출시됐다. [사진 김대영]

대부분의 국가에서 위스키로 인정 받으려면, 3년 이상 오크통에서 숙성해야 한다. 대부분의 싱글몰트 위스키 브랜드는 ‘12년’을 가장 저숙성 된 오피셜 제품으로 출시해왔다. 최소 12년 이상 숙성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전세계적인 싱글몰트 붐으로 수요는 많아졌는데, 당장 고숙성 위스키를 만들어낼 수 없게 됐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증류소가 ‘12년’을 가장 짧은 숙성 기간으로 삼았는데, ‘3년’을 붙이는 것도 체면이 안 선다. 그래서 숙성 기간을 표기하지 않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물론 짧은 오크통 숙성으로도 좋은 맛의 위스키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오랜 숙성만이 낼 수 있는 위스키 맛이 있다. 그리고 장기숙성 위스키는 오픈 후에 시시각각 변해가는 맛을 느끼는 재미가 더 있다. 아무래도 갖고 있는 향이 많기 때문에, 처음 드러나던 향이 다 사라지면 숨어있던 향이 나타나 재미를 더해준다. 숙성이 짧은 위스키는 이런 다양성을 갖기 힘든 편이다.

롱몬 1972. 쉐리 오크통에서 38년 간 숙성된 위스키 맛은 결코 NAS위스키가 흉내 낼 수 없다. [사진 김대영]

롱몬 1972. 쉐리 오크통에서 38년 간 숙성된 위스키 맛은 결코 NAS위스키가 흉내 낼 수 없다. [사진 김대영]

NAS 위스키가 싸게 나오면 당장 소비자들은 좋아할지 모르지만, 그럴수록 숙성 기간이 긴 위스키는 비싸진다. 숙성 기간이 짧은 위스키를 많이 팔면, 긴 시간 숙성시킬 위스키가 얼마 남지 않기 때문이다. 미래에는 지금은 비교적 살만한 18년 숙성 위스키도 너무 비싸 엄두조차 못 낼지 모른다. 결국, 고품질 위스키 맛은 우리로부터 점점 멀어질 것이다.

NAS위스키 마케팅을 열심히 하는 회사 중 하나가 에드링턴이다. 에드링턴의 대표적인 싱글몰트 위스키 맥캘란은 지난 몇 년 간 NAS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해왔다. 맥캘란은 2015년부터 ‘맥캘란 에디션’시리즈를 발매중인데, ‘넘버1’부터 발매해 올 해 ‘넘버5’까지 출시했다. 수집욕을 자극하는 ‘줄세우기 마케팅’ 덕에 판매량은 치솟고 있다. 지난해 맥캘란 에디션 넘버4 공식 발매 행사에서 브랜드 앰버서더는 “사두면 재테크용으로 좋다”고 말했다. 위스키 본연의 맛보다 다른 목적이 우선시 되는 것 같아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맥캘란 에디션 시리즈. [사진 김대영]

맥캘란 에디션 시리즈. [사진 김대영]

위스키는 늘 성공가도만 걸어오지 않았다. 대공황, 오일쇼크 등 세계 경제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위스키 업계도 침체기를 겪었다. 1980년대에는 극심한 위스키 침체기로 수많은 증류소가 문을 닫았다. 또 스코틀랜드인이 운영하던 많은 위스키 증류소가 세계적 대기업에 인수됐다. 그래도 위스키를 사랑하는 사람들 덕에 위스키는 다시 웃을 수 있었다. 그러나 NAS위스키의 양산이 다시 한번 위스키 불황을 가져올 시발점이 될까 걱정된다. 사람들의 혀 만큼 정직한 것도 없으니까.

중앙일보 일본비즈팀 과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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