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 마니아도 푹 빠진 럼의 세계, 그 매력은?

중앙일보

입력 2019.11.19 11:00

[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43) 

누구에게나 권태기는 온다. 목숨 걸고 사랑하겠다는 맹세가 시간의 흐름에 변해가기란 얼마나 쉬운지. 권태기를 극복 못 하면 사랑하는 이를 떠나 보내야 한다. 마찬가지로 취미 생활에도 권태기는 찾아온다. 위스키에 푹 빠져 살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위스키에 대한 애정이 식을 수 있다.

특히 술이라는 취미의 특성상,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면 애정은 금세 사라진다. 처음엔 어떻게 이런 맛이 나는지 신기하다가도, 경험이 축적되면 맛에 대한 감흥이 떨어지기도. 그렇다면, 위스키에 지친 당신에게 어떤 치료법이 필요할까? 다양한 치료법이 있겠지만, 럼 마시기를 권하고 싶다.

다양한 럼의 세계. [사진 김대영]

다양한 럼의 세계. [사진 김대영]

평소 위스키를 마시던 bar에서 계속 독특한 위스키 맛을 주문하는 내게 마스터는 럼을 한 잔 권했다. 당시에는 럼에 대해 ‘싸구려’라는 인식이 강해서, 왜 럼을 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한 모금 맛을 보고 럼에 대한 인상은 완전히 변했다. 위스키에서는 느낄 수 없던,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의 증류주의 향과 맛이 거기에 있었다. 위스키에 질려가던 내게 완전히 새로운 자극이 됐다.

좋은 럼은 위스키 부럽지 않은 풍미를 가지고 있다. La Favorite Privilege 1970, 39년. [사진 김대영]

좋은 럼은 위스키 부럽지 않은 풍미를 가지고 있다. La Favorite Privilege 1970, 39년. [사진 김대영]

많은 이들이 나처럼 럼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유통된 럼의 대부분이 값싼 화이트 럼이기 때문이다. 칵테일용으로 쓰이는 이 럼은 그냥 마시기엔 역하다. 숙성이 전혀 안 되어있기 때문이다. 숙성을 전혀 하지 않은 위스키 스피릿을 마시는 셈이다. 칵테일 제조용으로 만든 럼을 호기심에 맛봤다가 럼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생긴다. 럼을 많이 소비하는 유럽이나 미국에선, 숙성을 거친 ‘골드 럼’, 또는 ‘다크 럼’을 많이 마신다.

럼도 숙성을 통해 완성되는 술이다. 위스키와 마찬가지로 버번오크통, 쉐리오크통에서 많이 숙성시킨다. 럼을 생산하는 나라 중에 프랑스령인 곳에서는 꼬냑오크통도 많이 사용한다. 숙성을 거치면서 오크통 성분이 럼 스피릿에 스며들어, 다양한 맛을 연출한다. 대부분의 럼이 사탕수수가 재배되는 열대지역에서 생산되므로, 오크통에서 증발하는 양은 많은 편. 그래서 숙성 기간이 위스키보다 짧은 편이지만, 어떤 럼은 20년 넘게 숙성해도 알코올 도수가 60도가 넘는 경우도 있다.

론 자카파 로얄. 평균 숙성 30년 이상. [사진 김대영]

론 자카파 로얄. 평균 숙성 30년 이상. [사진 김대영]

럼을 즐기는데 가장 큰 벽을 꼽자면, 럼 특유의 향이다. 본드 맛이나 니스 맛으로 표현되는 이 향은 사탕수수쥬스나 당밀이 발효되어 알코올로 변할 때 생기는 고유의 향이다. 나는 이 향을 맡으면, 초등학생 때 국기함 만들던 게 생각난다. 국기함을 다 만들고 니스를 칠한 다음, 거기에 코를 갖다 대면 나던 그 향. 이 향을 받아들이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럼에 대한 호불호는 극명해진다. 가끔 이 향이 거의 사라지고 오크통 향만 남는 럼도 있지만, 극소수에 불과하다. 럼을 즐기려면 이 향과 친해질 수밖에 없다.

론 바르셀로 임페리얼. 당을 첨가한 럼은 달콤한 향이 럼 본연의 향을 억제해줘 마시기 편하다. [사진 김대영]

론 바르셀로 임페리얼. 당을 첨가한 럼은 달콤한 향이 럼 본연의 향을 억제해줘 마시기 편하다. [사진 김대영]

열린 마음으로 럼을 받아들이면 끝없어 보이는 다양성의 세계가 펼쳐진다. 전세계적으로 위스키를 만드는 나라보다 럼을 만드는 나라가 더 많다. 위스키는 제조법에 대해 여러 가지 제한이 많지만, 럼은 사탕수수를 원재료로 사용하면 럼이 된다. 그래서인지 럼을 마실 때면, 위스키에 비해 더 경쾌하고 자유로워진다. 위스키가 말끔한 정장을 입은 신사같다면, 럼은 꽃무늬 셔츠 입은 춤꾼 같다. 위스키에 지친 당신, 오늘은 럼을 만나 신나게 춤 한 판 춰보는 게 어떠신지.

중앙일보 일본비즈팀 과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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