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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스코틀랜드로…한국 첫 '싱글몰트' 꿈꾸는 이 사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41)

내가 위스키에 빠진 계기 중 하나는 위스키를 너무나 사랑하는 한 남자와의 만남이었다. 바로 김창수 씨. 대학생 때부터 위스키를 마시던 그는, 위스키에 깊이 빠져들어 스코틀랜드로 떠났다. 4개월간 자전거로 스코틀랜드의 모든 증류소를 방문한 그는 최초의 한국 싱글몰트 위스키를 만들겠다는 꿈을 품었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작은 증류기로 위스키 스피릿을 만들어, 작은 오크통에 숙성했다. 그리고 일본의 한 증류소를 찾아가 일주일 동안 연수도 받았다.

일본 치치부 증류소에서 연수 후 증류소 직원들과 함께. 좌측에서 7번째가 김창수 씨. [사진 김창수]

일본 치치부 증류소에서 연수 후 증류소 직원들과 함께. 좌측에서 7번째가 김창수 씨. [사진 김창수]

이 모든 과정을 좇으며 그에 대한 리포트를 만들어, 일본 NHK 방송에 그를 소개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4년 전, 2015년 12월의 일이다. 당시, 그는 10년 후인 2025년에는 위스키 증류소를 세우겠다고 했다. 그의 꿈은 현재진행형일까? 요즘은 무슨 일을 하고 살고 있는지, 그의 최초의 한국 싱글몰트 위스키에 대한 꿈은 여전한지, 중간 점검 차 인터뷰를 했다.

위스키에 빠진 계기는?

어렸을 때부터 술을 만드는 것이 꿈이었다. 그래서 다방면의 술에 대해 공부해오고 있었다. 그러던 중 라프로익 10년 캐스크 스트렝스를 접하고 위스키에 빠지게 되었다. 처음 접해보는 상상할 수 없는 오묘한 맛에 매료됐다.

왜 스코틀랜드 모든 증류소를 방문했나?

우리나라에서는 위스키를 만들지 않는다는 사실에 내가 만들어내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스코틀랜드 해리어트 양조대학에 진학해 공부하는 것. 그러나 돈이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증류소에서 일하면서 배우는 것이었다. 그래서 스코틀랜드의 모든 위스키 증류소에 무작정 찾아가, 일을 조르기로 했다. 자전거와 텐트를 들고 무작정 스코틀랜드로 떠났다.

자전거와 텐트만으로 스코틀랜드의 모든 증류소를 다녀왔다. [사진 김창수]

자전거와 텐트만으로 스코틀랜드의 모든 증류소를 다녀왔다. [사진 김창수]

가장 인상 깊었던 증류소는?

스프링뱅크 증류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스코틀랜드 증류소 대부분이 자동화, 분업화를 통해 생산의 효율을 추구한다. 하지만 스프링뱅크는 유일하게 모든 생산 과정을 과거 전통 방식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마치 위스키 박물관 같다고 할까? 진짜 스카치 위스키의 전통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한번 스코틀랜드에 간다면, 꼭 다시 가보고 싶은 증류소는?

위스키 증류소를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연구 중인데, 아무래도 최소 자본으로 운영되는 작은 곳을 가야 할 것 같다. 부합하는 증류소로는 스프링뱅크, 브루익라디, 킬호만, 에드라두어, 아빈제라크 등이다.

전통생산방식을 고수하는 스프링뱅크 증류소의 증류기. [사진 김창수]

전통생산방식을 고수하는 스프링뱅크 증류소의 증류기. [사진 김창수]

스코틀랜드에 다녀오기 전과 후, 위스키에 대해 달라진 생각은?

스코틀랜드 증류소에서 일하기는 실패했지만, 위스키를 만들겠다는 목표는 더 확고해졌다. 스코틀랜드 길바닥에서 4개월이 넘는 시간을 자전거와 텐트에 의지하며 보냈다. 괴로움의 연속이었다. 그런데도 목표했던 102개의 증류소를 모두 다 방문했다. 내가 이 꿈을 얼마나 간절하게 원하는지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증류소를 방문하면서 얻은 다양한 지식과 경험은 그다음이다.

일본 치치부 증류소에서 위스키 만드는 법을 배운 게 어떤 도움이 됐나?

외부에서 보고 글로 접하는 것과 직접 만들어 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특히 비슷한 또래의 같은 관심사의 친구들과 같이 먹고, 자고, 일하며 보낸 시간이 제일 큰 즐거움이었다. 그동안 위스키를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의견을 나눌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평소 궁금한 것들이나 이런저런 실험적인 생각들을 공유하며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사실 ‘제대로 만들어 본 적도 없는 위스키를 내가 과연 만들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과 매일 싸운다. 하지만, 이런 내게 큰 자신감을 준 곳이 치치부 증류소다. 지금은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증류소가 된 치치부 위스키지만, 이들도 처음 위스키를 만들 때는 위스키 제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다고 한다. 아무리 준비를 많이 한다 해도, 직접 위스키를 만들며 느끼는 것이 훨씬 크다면, 우선 시작하고 고쳐 나가야 한다고 배웠다.

치치부 증류소 오크통 저장고에서 오크통을 쌓는 김창수 씨. [사진 김창수]

치치부 증류소 오크통 저장고에서 오크통을 쌓는 김창수 씨. [사진 김창수]

당장 위스키 증류소를 만들 자금을 지원해준다면, 성공시킬 자신 있나? 자신 있다면 그 이유는?

위스키 증류소의 성공 기준이 무엇인가. 만약 그 성공이 돈을 버는 것이라면 자신 있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증류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많은 자본, 수년간은 수익이 없을 것을 각오한 투자 등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그냥 아파트나 사는 게 더 안정적일 것이다.

하지만 맛있는 위스키를 만드는 것이 성공이라면 자신 있다고 말할 것이다. 돈 벌 생각이라면, 위스키 증류소를 만드는 건 매우 어렵다. 하지만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위스키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다. 맛있는 한국산 위스키를 직접 만들고 싶다. 위스키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국산 위스키 하나 없다는 것은 매우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증류소 연수까지 마치고, 지금까지 무슨 일을 했나?

생계를 유지하면서 위스키 증류소를 만들기 위한 준비를 병행해왔다. 증류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돈을 모아야 했다. 동시에 위스키 공부도 해야 했다. 이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려고, 주류 업계에서 일했다. 면세점에서 위스키를 팔았고, 주류 수입사에 들어가 영업을 했다. 그리고 조니워커 하우스에서 위스키 판매, 교육 등을 했다. 최근에는 작은 바를 차려서 위스키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 위스키를 만든 다케츠루 마사타카의 자서전도 번역하고 있다.

지금은 사라진 조니워커 하우스에서 위스키를 설명하고 있는 김창수 씨. 오른쪽에서 두 번째. [사진 김대영]

지금은 사라진 조니워커 하우스에서 위스키를 설명하고 있는 김창수 씨. 오른쪽에서 두 번째. [사진 김대영]

앞으로의 목표

2014년 스코틀랜드로 떠날 때의 그 미칠듯한 떨림, 두려움, 설렘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그 후, 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2015년 NHK 방송 당시, 10년 정도 후를 목표로 생각했다. 다행히 계획했던 것보다 시일이 당겨질 것 같다. 내년에 본격적으로 증류소 설립을 위한 작업에 들어갈 계획이다. 그리고 2021년에는 위스키 증류소의 문을 열 수 있도록 하겠다. 2023년이면 최초의 한국산 싱글몰트 위스키를 세상에 내놓고야 말겠다.

중앙일보 일본비즈팀 과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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