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42)
오래된 위스키를 딸 때는 늘 긴장한다. 코르크 재질의 병마개가 부스러지지 않을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오래된 코르크는 건조해지면 쉽게 갈라지고, 갈라진 코르크는 내구성이 약해져 부스러지고 만다. 또 코르크에 곰팡이가 슬면, 술맛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코르크는 전통적으로 위스키나 와인 등의 병마개 역할을 해왔지만, 불량률이 꽤 높아 여간 귀찮은 존재가 아니다.
어떤 이는 코르크가 마르는 걸 막으려면 위스키를 종종 눕혀, 코르크를 적셔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코르크에 위스키를 적시는 것이 코르크의 건조를 막는다고 할 순 없다. 어떤 코르크는 젖으면 습기가 차 곰팡이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코르크 속사정을 알 길이 없다. 그렇다고 코르크 상태를 알려고 위스키를 마구 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일본 위스키들은 코르크 대신 스크류캡을 많이 사용한다. 일본의 양대 위스키 회사, 산토리와 아사히주류는 자사 위스키 야마자키, 요이치 위스키에 스크류캡을 쓰고 있다. 병 입구의 홈을 통해 시계방향으로 돌리면 잠기고, 시계반대방향으로 돌리면 열리는 스크류캡. 아무리 오랫동안 열지 않아도 코르크가 상하거나 부스러질 염려가 없다. 또 밀폐가 잘되기 때문에, 위스키가 공기와 만나 산화되는 걸 잘 막아준다.
일본에서 스크류캡이 널리 쓰이는 데는 일본 bar 문화의 발달과도 연관이 있다. bar에서 위스키가 많이 소비되는데, 여러 번 위스키를 열고 닫아야 하는 바텐더에게 스크류캡이 코르크보다 더 적합했다. 아무리 여러 번 열고 닫아도 내구성에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또 코르크를 사용하면, 코르크 일부가 위스키 안에 들어갈 수 있지만, 스크류캡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실리적인 면에선 코르크가 스크류캡을 따라가기 힘들어 보인다.
그래서 다 마신 위스키 코르크 중에 정상 제품을 따로 모아두면 좋다. 상태가 좋은 코르크는 오래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위스키를 땄는데 코르크가 불량이면, 그 코르크는 버리고 정상 코르크로 병 입구를 막자. 위스키병마다 그에 맞는 코르크 크기나 모양도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코르크를 모아두는 것이 좋다.
이렇게 불편함이 많이 따르는 코르크지만, 대부분의 위스키 증류소는 여전히 코르크를 고집한다. 코르크의 전통을 이어간다는 측면도 있겠지만, 코르크 특유의 ‘감성’이 더 큰 이유일 것이다. 바텐더가 위스키병에서 코르크를 빼낼 때 나는 ‘끼익-끼익’하는 소리. 이 소리는 왠지 모르게 위스키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그리고 ‘뽕-!’하고 코르크가 뽑힌 뒤 따라오는 ‘꼴꼴꼴꼴-‘하는 잔에 위스키가 부딪히는 소리. 이 소리들의 흐름 속에 코르크가 빠지면, 잘 만든 코스 요리 중 하나가 어긋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위스키 소비자 입장에서는 불량이 적은 스크류캡이 편하지만, 역시 코르크만의 감성도 소중하다. 이 두 가지를 결합한 형태의 마개도 몇 가지 나와 있지만, 이도 저도 아닌 느낌이라 불만족스럽다. 위스키 증류소들이 감성과 실용성, 두 마리 토끼를 잡아주길 바란다면 욕심이 과한 걸까.
중앙일보 일본비즈팀 과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