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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공사장에 화장실 갖춘 캠핑카 “노상 방뇨 걱정 줄었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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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캠핑카를 활용한 편의시설에서 현장 건설근로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 서울시설공단]

캠핑카를 활용한 편의시설에서 현장 건설근로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 서울시설공단]

#1. 밤새 도로 위에서 일하다 보면 볼일을 보고 싶어도 화장실 찾기가 어렵다. 지하철역사나 인근 건물이 닫혀 있을 땐 노상 방뇨하기도 한다. 작업복을 갈아입을 곳도 없어 공사장 구석에서 후다닥 입는다. (현장 작업자 A씨)

강남역 사건 뒤 화장실 개방 줄어 #야간 현장 인력 44% “실외 용변” #서울시설공단, 캠핑카 시범 운영 #“도면 확인, 현장 회의에도 도움 돼”

#2. 손 씻을 곳이 없어 공사용수나 물티슈로 사용한다. 손에 묻은 검댕으로 티슈는 금방 더러워진다. 그 손으로 야참으로 준 빵을 그냥 툭 떼서 먹는다.(현장 작업자 B씨)

지난 18일 오후 10시쯤 서울 지하철 문래역과 영등포구청역 사이 차도에 ‘생뚱맞게’ 캠핑카 한 대가 등장했다. 밤새 한 자리를 지키던 캠핑카는 이튿날 오전 6시가 돼서야 사라졌다. 그날 오후에도 캠핑카는 다시 같은 자리에 나타났다.

밤마다 도심 한복판에 나타나는 캠핑카는 상수도관 교체 작업을 하는 현장 노동자를 위한 ‘특별한’ 편의공간이다. 이곳에선 지난여름 ‘붉은 수돗물’ 사태를 초래한 노후 상수도관 교체 공사가 이뤄지고 있었다. 현장에서 일하는 작업자들이 화장실·세면대 등을 쓸 수 있도록 캠핑카를 둔 것이다.

야간 작업자용 캠핑카 살펴보니

야간 작업자용 캠핑카 살펴보니

그동안 현장 작업자들은 화장실 가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2016년 5월 강남역 화장실 사건 이후에 개방형 화장실이 줄어든 것도 영향을 줬다. 서울시설공단이 지난 8월 현장 작업부 3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43.6%가 “어두운 곳에서 용변을 해결한다”고 했다. 가장 필요한 시설로 꼽은 건 ‘이동식 화장실’이었다. 서울시설공단 소속의 한 직원이 아이디어를 냈다. 이인엽 시설공단 공사감독처 과장은 “캠핑카 안에 화장실 등 시설이 갖춰져 있어 이를 공사 현장에 도입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주변 반응이 좋아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공사장에는 휴게공간을 두는 것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건설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1억원 이상 건설공사의 사업주는 현장에 화장실·식당·탈의실 등을 둬야 한다. 하지만 사업 규모가 작을 때는 관행적으로 불편을 감수해왔다. 상수도관 교체처럼 밤새 이동하면서 작업하는 현장엔 화장실을 설치하기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 과장의 아이디어는 곧바로 채택됐다. 민간에서 임대한 캠핑카 두 대가 문래동과 쌍문동 배급수관 정비 공사 시범 투입됐다. 운영 경비는 대당 월 400만여 원이다. 임대료 300만원과 유류비·청소비·인건비 등 운영비 100만원이 포함된 액수다. 간단히 사무를 볼 수 있게 테이블과 노트북·프린트 등 사무용품도 갖췄다. 쌍문동 현장에서 시공을 맡았던 김종서 소장은 “그동안 현장에서 회의하려면 도면을 펼쳐 볼 곳이 마땅치 않아 자동차 보닛 위를 활용하기도 했다”며 “캠핑카 하나 도입했을 뿐인데 근무여건이 두세 배는 나아진 것 같다”고 기뻐했다.

캠핑카는 앞으로 서울의 건설 현장에 확대 도입된다. 제삼차 서울시설공단 상수도2팀장은 “화장실 크기를 더 넓게 하는 대신 침대를 줄이는 등 작업 환경에 맞도록 개조된 캠핑카를 지원할 예정”이라며 “운영 대수가 경비는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야간 작업자용 캠핑카 살펴보니

● 도입 : 2019년 10월 문래동 상수도관 공사장
● 구비 : 화장실, 세면대, 미니회의실, 탈의실 등
노트북·프린터·의자 등 사무용품
● 운영 경비 : 대당 월 400만원
임대료·유류비·청소비 등 포함
● 계획 : 화장실 공간 늘리고, 침대 줄이는 등
개조 거쳐 다른 현장으로 확대 예정

박해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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