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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은 뜯고 대학은 철거…'레논 월' 온라인 망명 떠난다

중앙일보

입력

지난 18일 홍콩 시민에 대한 지지를 표시하기 위해 서울대에 설치됐던 '레논 월' 일부가 훼손되어 있다. [연합뉴스]

지난 18일 홍콩 시민에 대한 지지를 표시하기 위해 서울대에 설치됐던 '레논 월' 일부가 훼손되어 있다. [연합뉴스]

대학가에서 수난을 겪고 있는 홍콩 지지 '레논 월'이 온라인으로 옮겨 가고 있다. 일부 학교에서는 자체 경비부터 박물관 보관까지 레논 월을 지키기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지난 19일 페이스북 페이지 '한국 홍콩시위 레논 월'이 문을 열었다. 이때는 홍콩 지지 대자보를 게시한 한국 학생과 이에 반발한 중국인 유학생 사이의 갈등이 정점에 치달은 시점이다. 해당 페이지에는 개설 5일 만에 약 100여개의 홍콩 지지 메시지가 올라왔다.

'한국 홍콩시위 레논 월' 페이지를 연 A씨는 "캠퍼스 대자보보다 훼손 시도에 덜 노출되는 온라인 공간이 홍콩 시민들에 대한 지지 메시지를 보관하기 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면서 "대자보나 레논 월을 훼손하지 않는 것은 한·중 학생이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기본"이라고 밝혔다.

페이스북 페이지 '한국 홍콩시위 레논월' [페이스북 캡쳐]

페이스북 페이지 '한국 홍콩시위 레논월' [페이스북 캡쳐]

10여개 대학서 레논 월 훼손…철거한 학교도

지난 18일 광주 북구 전남대학교 인문대학 인근 교정에 붙인 홍콩 시위 지지 벽보인 '레논월'에 홍콩 시위를 비판하는 글이 적혀 있다. 홍콩 민주화 지지 입장을 밝힌 학생들은 현수막과 벽보 훼손 사건을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고 이날 밝혔다.['벽보를 지켰던 시민들' 제공. 연합뉴스]

지난 18일 광주 북구 전남대학교 인문대학 인근 교정에 붙인 홍콩 시위 지지 벽보인 '레논월'에 홍콩 시위를 비판하는 글이 적혀 있다. 홍콩 민주화 지지 입장을 밝힌 학생들은 현수막과 벽보 훼손 사건을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고 이날 밝혔다.['벽보를 지켰던 시민들' 제공. 연합뉴스]

대학가를 달군 레논 월이 온라인으로 옮겨간 배경에는 잇따른 훼손 사건이 있다. 지난 8일 서울대에서 처음 시작된 홍콩 지지 레논 월 운동은 며칠 새 연세대·한양대 등으로 확산됐다. 서울뿐 아니라 부산대·전남대·충북대 등 전국에서 활동이 이어졌다.

레논 월 운동은 곧바로 중국인 유학생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유학생들이 대자보와 레논 월에 욕설을 남기거나 찢는 일이 이어졌다. 지난 13일 한양대에서는 양국 학생 수십명이 대치했고, 명지대 등에서는 폭행 사건도 일어났다. 현재까지 14개 대학서 훼손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대학들의 움직임도 레논 월의 '온라인 망명'을 부추긴다. 지난 19일 한국외대는 인문과학관에 게시된 '홍콩 항쟁에 지지를' 대자보 등을 철거했다. 학교 측은 안내문을 통해 "무분별하고 자극적인 대자보와 유인물 부착으로 갈등이 계속해 악화되고 있다"며 외부 단체의 게시물 부착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충남대에서도 학생회관에 게시된 홍콩 지지 대자보와 레논 월에 대한 유학생 반발이 이어지자 학교 측이 이를 철거했다. 서울대는 면학 분위기 조성 등을 이유로 한 도서관 측의 철거 요청을 받아들여 학생들이 레논 월을 철거했다.

역도부 '경비' 선 고려대, 박물관 보관한 한양대

지난 20일 소셜미디어 '에브리타임'에 홍콩 지지 대자보를 게시한 대학생 김모씨가 대자보를 한양대 박물관에서 보관하리고 한 사실을 알리고 있다. [에브리타임 캡쳐]

지난 20일 소셜미디어 '에브리타임'에 홍콩 지지 대자보를 게시한 대학생 김모씨가 대자보를 한양대 박물관에서 보관하리고 한 사실을 알리고 있다. [에브리타임 캡쳐]

대학생들의 홍콩 지지 열기는 '한국 홍콩시위 레논 월' 페이지뿐 아니라 각 학교 온라인 커뮤니티로 번지고 있다. 학교생활과 관련된 제보를 보내는 익명 기반 페이지 '대나무숲'에는 홍콩 지지를 담은 게시물과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학생과 대학이 나서 레논 월을 지키려는 움직임도 시작됐다. 한양대와 학생들에 따르면 한양대 인문과학관에 설치됐던 홍콩 지지 대자보와 여기에 붙은 메모지 500여장이 지난 21일 한양대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대자보를 처음 붙인 한양대 학생 김모씨는 소셜미디어 '에브리타임'에 "수시 일정 때문에 내일(21일)을 끝으로 레논 월 캠페인이 종료된다"면서 "중국 학우분들이 쓰신 욕설과 무례함도 박물관에 그대로 기증돼 오랫동안 남아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양대 관계자는 "박물관은 학교 안팎의 대자보나 포스터 등 모든 기록물을 보존하고 있다"면서 "모두 일종의 사료라고 보고 수장고에 모아놓는다. 다만 전시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직접 대자보를 지키기 위한 경비에 나선 곳도 있다. 지난 14일 고려대 학생들에 따르면 고려대 역도부원이 정경대 후문에 있는 대자보 훼손을 막기 위해 경비를 섰다. 이들은 계속되는 대자보 훼손을 막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남궁민 기자 namg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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