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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정위 파격실험…"과장님 나빠요" 두번땐 승진 누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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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정부 부처 최초로 ‘간부 평가’를 실시한다. 부하가 일방적으로 간부를 ‘상향 평가’하는 방식이라 논란이 예상된다. 보수적인 정부 부처에선 공정위의 파격적인 실험이 확산할까 주목하고 있다.

부처 최초 '간부 평가' 실험

25일 공정위에 따르면 간부 평가는 올 연말 처음 시행됐다. 이달 말까지 4급 서기관급 이하 부하가 상사인 과장급 간부와 3급(국장급) 이상 고위공무원단 68명을 평가한다. 업무 능력ㆍ배려와 존중ㆍ리더십과 동기 부여ㆍ책임감 등 4개 항목에 10점까지 배점을 줄 수 있도록 했다.

‘보여주기’식 평가가 아니란 점에서 과거와 달라졌다. 2회 연속 상위ㆍ하위 10%에 속할 경우 위원장에게 보고하고 인사조치(성과 연봉은 물론 승진ㆍ보직에 반영)할 수 있도록 했다. 상위 10%는 실명을 공개하되, 하위 10%는 익명 처리하도록 했다. 남동일 공정위 운영지원과장은 “처음엔 하위 10%도 실명을 공개하려다가 일부 직원의 반발이 있어 익명 처리하기로 했다”며 “상·하위 10%에 속했다고 해서 반드시 인사조치하는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중앙부처 48곳 중 교육부ㆍ국토교통부ㆍ농림축산식품부 등 24곳이 ‘다면 평가(상사ㆍ동료ㆍ부하가 간부 평가)’를 도입했다. 2016년 14곳에서 빠르게 느는 추세다. 공정위를 비롯해 기획재정부ㆍ산업통상자원부ㆍ국방부 등은 다면 평가를 도입하지 않은 부처로 분류됐다. 다면 평가를 활용한 부처에선 실제 승진ㆍ보직에 직접 활용하기보다 ‘성과급’에 반영하거나 참고자료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정지만 인사혁신처 성과급여과장은 “다면 평가는 일방향 평가를 지양하고 상사ㆍ동료ㆍ후배 등 다양한 시각에서 평가를 받자는 취지로 부처마다 운영 방식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공정위의 인사 실험은 다른 부처 다면 평가는 물론 민간 기업과 비교해도 방식ㆍ실효성에서 차별화했다. 무엇보다 ‘상급자’의 평가가 아예 빠졌다는 게 특징이다. 삼성전자도 최근 부하가 상사를 평가하는 ‘상향식 다면 평가제’를 도입했지만, 기존 하향식 평가를 함께 운용한다. 남동일 과장은 “인사는 원래 위에서 하는 측면이 있어 상급자가 굳이 평가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제외했다”며 “직원 70% 이상이 간부 평가 도입을 원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정위 내부에선 ‘인기투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공정위 한 과장은 “혼을 많이 내거나 일을 많이 시키면 나쁜 상사로 평가할 것”이라며 “안 그래도 힘든 부서를 기피하는 추세인데 직원에게 잘 해주고 일은 적당히 하는 간부가 높은 점수를 받는 인기투표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다른 정부부처에선 점점 공무원 노조 입김이 세지는 상황에서 간부 평가 실험이 확산할지 주목하고 있다. 기재부 한 국장급 간부는 “인사 고과엔 직접 반영하지 않지만, 연말 노조의 ‘닮고 싶은 상사’ 평가 시즌이 되면 어떻게든 닮고 싶은 상사도, 닮기 싫은 상사에도 꼽히지 않으려 노력한다”며 “노조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데 공정위처럼 인사 평가에 반영하는 식이라면 파급력이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조 전 공정위원장(현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해 8월 조직쇄신안을 발표하며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뉴스1]

김상조 전 공정위원장(현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해 8월 조직쇄신안을 발표하며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뉴스1]

논란에도 불구하고 간부평가를 도입하는 건 직원 사기를 끌어올리자는 취지에서다. 배경은 김상조 전 위원장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전 위원장 시절 퇴직자 재취업 비리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전속고발권(공정거래법 사건에 한해 공정위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 수사)을 일부 폐지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을 추진하면서 직원 사기가 뚝 떨어졌다. 지난해 재취업 제한, 외부인 접촉 제한 등을 포함한 ‘조직 쇄신안’까지 꺼내 들자 반발이 극심해졌다. 때마침 일부 간부의 '내부 갑질' 문제까지 불거졌다. 그러자 김 전 위원장은 지난 1월 노조 공정위 지부와 협약을 맺고 간부평가를 도입하는 내용에 합의했다. 공정위 한 간부는 “김 전 위원장이 ‘직원 달래기’용으로 도입한 간부평가 제도가 정작 조성욱 위원장 시절 처음 시행됐다”고 말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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