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본사가 가맹점 수익 보장하라" 이런 법안까지 낸 20대 국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게 무리한 규제라기보다, 어떤 면에선 시장원리에 더 부합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으로 법안을 냈다."

[규제의 뿌리, 국회]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다른 사람의 수익을 또 다른 민간이 보전하게 하는 건 헌법에 어긋난다."
지철호 공정위 부위원장="그냥 쉽게 모든 가맹점에 최저수익을 보장해준다면 정말 우리나라 가맹사업은 존속할…(수가 없을 것이다).”

지난 3월 25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 가맹사업법 개정안을 놓고 국회에서 설전이 이어졌다. 프랜차이즈(가맹) 본사가 점주의 노력이나 상권 특성에 상관없이 점주에게 일정 수익을 보장하라고 의무화하는 법안 때문이다. 야당뿐 아니라 공정위도 곤혹스러워한 '가맹점 최저수익보장제'는 같은 당 우원식 의원이 낸 개정안에도 포함돼 있다. 재계 관계자는 "최저임금 인상과 경기 침체로 어려워진 소상공인 문제를 정부가 민간 기업에 떠넘기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의사봉. [셔터스톡코리아]

의사봉. [셔터스톡코리아]

20대 국회가 낸 기업 관련 법안 1263건 중 83.7%는 민간 기업의 자율을 침해하고 경쟁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규제강화 법안'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일보와 한국경제연구원이 20대 국회의 5대 경제 관련 상임위에 발의된 기업 관련 법안을 분석한 결과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ㆍ환경노동위원회ㆍ기획재정위원회ㆍ정무위원회ㆍ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2016년 5월 말 20대 국회 개원 이후 지난달 15일까지 발의된 법안(6271건) 중 기업 관련 법안이 분석 대상이다.

규제법안의 상당수는 공정경제ㆍ갑을관계 개선ㆍ소상공인 보호 등 정부 정책과 궤를 같이했다. 정무위에 접수된 기업 법안 중 35%(404건)가 규제강화였다. 특히, 가맹사업법·공정거래법 개정안은 20대 국회 들어 각 78건·126건씩 발의됐다. 19대(33건·91건)보다 급증했다. 강지원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에 맞춰 관련 법안이 많이 발의됐다”며 “19대 국회와 비교했을 때, 정부 정책과 법안 발의 사이의 인과관계가 뚜렷해졌다”고 평가했다.

20대 국회 5대 상임위가 낸 기업 규제법안.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20대 국회 5대 상임위가 낸 기업 규제법안.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①국회는 규제법안, 왜 이렇게 쏟아내나

규제법안의 급증엔 정부의 '청부입법' 영향이 크다. 정부 정책 방향과 유사한 의원 입법안은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더라도 정부가 시행령·규칙에 흡수해 실제 규제가 됐다. 예를 들어, 형사사건 실형이나 집행유예를 받은 임원의 이사직을 5년간 제한하는 상법 개정안(박광온 의원)은 정부가 지난 8일부터 시행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 시행령'에 상당수 반영됐다.

지주회사가 사업 연관성이 있는 회사만 손자회사로 둘 수 있게 제한하자는 공정거래법 개정안 3건(박찬대·채이배·박용진 의원안)은 공정위가 이달 초 발표한 지주회사의 손자회사 규제강화 방안에도 담겨 있다. 정무위원장인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1월 발의한 공정거래법 개정안 역시 정부가 나중에 낸 전부개정안과 거의 판박이처럼 같았다. 기업의 담합 의혹 등에 대해선 공정위의 고발 없이도 검찰이 기업을 수사할 수 있는(전속고발권 개편) 내용이 핵심이다. 정부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여당 의원들이 규제법안을 잇달아 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만기 자동차산업연합회 회장은 20일 열린 산업발전 포럼에서 “최근에는 정부 내 부처 간 이견 조정을 해야 하는 등 까다로운 절차를 회피하기 위해 정부가 국회의원에게 입법을 의뢰하는 ‘청부 의원 입법’이 크게 늘었다”며 “졸속입법과 과잉규제로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②어떤 규제강화 법안이 많나

규제강화로 분류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정부의 '재벌개혁'에 부응하는 게 대부분이다. 2016년 10월 채이배 의원(바른미래당)이 대표로 낸 개정안은 지주회사가 자회사ㆍ손자회사 지분을 현재 최소 20%(비상장사는 40%)에서 30%(비상장사는 50%)로 높이는 내용이다. 지주회사가 자회사의 지분을 현재보다 최소 10%포인트 더 가져야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게 했다. 이 법이 통과되면 삼성·현대차·SK 같은 대기업은 수조원을 지분 매입에 써야 자회사를 유지할 수 있다. 채 의원은 법안을 내면서 “지주사는 2007년 법 개정으로 지배주주의 지배권이 강화되고 경제력 집중이 심화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회 계류 중인 법안.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국회 계류 중인 법안.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이에 대해 신현윤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산업전환기를 맞은 기업이 신산업에 투자해야 할 돈으로 (지배구조 안정을 위해) 지분을 사야 할 상황”이라며 "공동 기술개발이나 해외 시장개척도 담합으로 비칠 우려를 하게 되면 기업 활동이 상당히 위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③ 민간기업 고용·임금도 법으로 제한하자?

일부 법안은 기업의 채용·임금 정책에 과도하게 규제하는 내용이 담겼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국내 법인의 임원 연봉을 고용노동부 장관이 고시하는 최저임금(시간당 8350원)의 30배 이하로 제한하는 최고임금 상한제를 법제화하자고 발의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이 임원에게 월 5235만원 이상을 임금으로 지급할 경우 해당 임원은 부담금을, 법인은 과징금을 정부에 내야 한다. 10대 그룹의 한 임원은 "A급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글로벌 기업이 서로 경쟁하는데 '연봉 상한제'가 있는 국내 기업에 어느 인재가 오겠느냐"며 "실적이 나쁘면 임원부터 잘려나가는 게 기업인 것을 국회는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당 이정미 의원은 현재 공공기관이 정원의 3%를 청년 미취업자로 의무 채용하는 제도를 300인 이상 민간 기업에 확대하자는 법안을 발의했다. 비율도 5%로 올리고, 이를 어기면 기업이 고용부담금을 내도록 했다. 이 의원은 “민간기업도 이들에 대한 의무고용에 나서도록 규정해 의무고용제도 취지를 높이려는 것”이라고 제안 이유를 설명했다. 구조조정을 하려면 노조의 승인을 얻도록 법제화하자는 친노조 법안도 있다. 김종훈 의원(새민중정당)의 제조업발전특별법안은 국내총생산(GDP)의 3%(2018년 약 56조원) 내에서 산업부 장관이 제조업발전기금을 조성하도록 하고, 기업이 구조조정시엔 노조의 승인을 얻도록 강제했다. 경총 관계자는 “현재보다 노동시장 유연성을 더 떨어뜨리고 노조의 경영개입을 법으로 보장하자는 것"이라며 "수십조 기금은 결국 기업에 걷을 돈인데, 주주이익 침해 논란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④국회 통과 안 됐는데…왜 문제?

기업들은 이런 반(反)기업 법안이 발의된 사실만으로도 위축되는 분위기다. 익명을 요구한 대기업 대관(對官) 담당 임원은 “대기업에 대한 반감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법안이 나올 때마다, 또 시민·소비자의 정서를 자극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한경연의 유정주 기업혁신팀장은 “기업은 아직 통과되지 않은 법안이라도 파급 효과를 사전에 분석하고 대비해야 하는 부담이 크다”며 “지배구조나 고용 등 불확실성이 커지면 투자나 의사결정에 기업은 소극적이게 된다”고 말했다.

물론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이 모두 통과되는 것은 아니다. 19대 국회 때 법안통과율은 41%(전체 접수 법안 1만7822건)였다. 문제는 기업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규제 법안이 법으로 뿌리내리고 나면 나중에 문제가 확인돼도 좀체 개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주52시간제를 담은 근로기준법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2월 개정안이 통과돼 5개월 이후 시행되자 부작용이 속출했다. 대통령직속 경제노동사회위원회가 올해 2월 탄력근로제 개선 방안에 합의하고 문재인 대통령도 법안 개정 필요성을 인정했지만 국회에선 꿈쩍 않고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불신이 깊은 한국적 노사 관계 때문에 노동 관련 법은 재개정이 무척 어렵다”며 "기업별 상황에 따라 노사 합의로 제도를 바꿀 수 있도록 국회는 가능한 규제 법안을 만들지 않고 열어두는 게 맞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특별취재팀=박수련·강기헌·임성빈 기자 park.sury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