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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을 지켜라” 13만6682명 탄원…“팬덤 무죄 호소” 비판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경기도지사 이재명 지키기 범국민대책위원회' 소속 회원들이 13만여명의 탄원서명부를 제출하기에 앞서 무죄를 탄원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경기도지사 이재명 지키기 범국민대책위원회' 소속 회원들이 13만여명의 탄원서명부를 제출하기에 앞서 무죄를 탄원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유·무죄 결과를 떠나 대한민국 시·도지사 협의회 회장으로서 회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어려운 문제에 대해 선처를 호소하는 게 양심에 맞는다고 생각해 (탄원)한 것입니다.”

권영진 대구시장이 20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말한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위해 탄원서를 낸 이유다. 권 시장을 포함한 14개 시·도지사는 전날인 19일 대법원에 이 지사를 위한 탄원서를 제출했다. 원희룡 제주지사(무소속)와 이철우(자유한국당) 경북도지사는 동참하지 않았다. 한국당 소속인 권 시장이 서명 명단에 포함돼 눈길을 끌었지만 그는 “정치적 생각이나 정파를 떠나 한 일이니 확대해석하지 말아달라”고 강조했다.

이 지사의 12월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탄원 행렬이 화제다. 이 지사는 지난 9월 6일 항소심에서 친형 강제입원 절차 지시 관련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당선무효형인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권영진 “정파 떠나 양심적으로 탄원” 

이재명 지키기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는 20일 오후 3시 이 지사에 관한 탄원서를 대법원에 제출했다고 같은 날 밝혔다. 범대위 회원 수십 명은 이날 박스 23개에 담긴 탄원서를 대법원 민원실에 접수했다. 범대위가 추정한 탄원인 수는 13만6682명이다.

직권남용과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4가지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받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 9월 6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직권남용과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4가지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받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 9월 6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범대위 측은 “워낙 많은 지역과 단체에서 탄원서를 작성해 정확한 인원을 파악하기 어렵다”면서 “언론에 알려진 탄원 내용은 최대한 추정해 인원을 작성했으며 종이 서명에서 글씨체와 주소가 같은 건들은 한 사람이 가족 명의로 서명한 것이라고 파악해 다른 가족 인원은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탄원 인원이 10만명을 훌쩍 넘은 것과 관련해 범대위 측은 “우리도 놀랐다”며 “이재명 지사에 대한 2심 선고가 국민의 법 상식으로 보기에도 다소 억울하다는 측면이 있다는 얘기 아니겠냐”고 말했다. 하지만 모든 탄원서가 선처를 호소하는 내용은 아니다. 범대위 측은 “정확한 수는 모르겠지만 엄벌을 주장하는 탄원서도 있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또 범대위 측은 “탄원서가 판결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된다, 안된다는 말하기 어렵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탄원을 진행한 것”이라며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 보다 탄원을 바라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고 이를 보여주는데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답했다.

범대위 추정 탄원인 13만6682명 

탄원의 시작점은 이국종 아주대 교수였다. 이 교수는 범대위가 출범(9월 25일)하기 전인 지난 9월 19일 “이 지사에 대한 판결은 경기도민의 생명과 안전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깊이 헤아려 주셔서 도정을 힘들게 이끌고 있는 도정 최고책임자가 너무 가혹한 심판을 받는 일만큼은 지양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한다”고 쓴 10쪽 분량의 자필 탄원서를 냈다.

이후 국내외, 각계각층에서 탄원 행렬이 이어졌다. 경기도 포천시 백운계곡 상인들, 칠레·케냐·짐바브웨·콩고 의원들, 각 지역 민주당 의원들, 경기도 시장·군수 협의회,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경기도 조계종 스님들, 경기도 상인연합회 상인들, 경기도청 공무원 노조,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족회, 웹툰 작가들, 원혜영·임종성·김두관·제윤경·유승희·안민석·박지원·전해철 국회의원, 이외수 작가, 노혜경 시인, 이해동 목사, 함세웅 신부,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변호사 176명, 14개 시·도지사 등이다.

이국종 아주대 중증외상센터 교수가 지난 9월 24일 자신의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위한 탄원서 제출에 항의하기 위해 아주대병원을 찾아온 보수시민단체 관계자들을 만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이국종 아주대 중증외상센터 교수가 지난 9월 24일 자신의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위한 탄원서 제출에 항의하기 위해 아주대병원을 찾아온 보수시민단체 관계자들을 만나고 있다. 최정동 기자

탄원 이유는 이 지사 개인을 향한 지지와 응원, 경기도 정책 실현의 지속성, 선출직으로서 공감대 등으로 다양하다. 이 지사 탄원 기사에는 “정치적 견해를 떠나 이 지사가 일은 잘한다”는 취지의 댓글이 자주 올라온다. 변호사 176명은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를 부당하게 넓게 인정한 것 등 항소심 판결에서의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며 법리적 문제를 이유로 탄원했다.

전문가 “포퓰리즘 경계해야” 

유례없는 탄원 행렬을 바라보는 우려와 비판의 시각도 있다. 지난 10월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김영우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 지사 구명운동에 공무원이 나서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 역시 “도정의 공백은 도지사가 도민들에게 죄송해하고 책임져야 할 부분이지 그걸 이유로 재판부에 탄원서를 내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질타했다.

지난 19일 공지영 작가는 페이스북에서 “민주당이 선거법 위반 판결받은 사람 구명에 혼신을 다하고 있다. 거물들이 줄줄이 서명해서 선처받는 선례를 만들겠다는 건가? 여기에 서명하시는 거물들에게 묻고 싶다”며 이 지사 탄원을 비판하는 듯한 글을 올렸다. 한 자유한국당 의원은 “팬덤이 있는 정치인은 무죄를 호소하고 평범한 서민은 아무리 옳아도 지원을 못 받는다면 ‘팬덤 무죄, 무팬덤 유죄’인가”라며 비판했다.

이 지사 탄원 행렬에 관해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탄원은 보편적 방식이며 많은 사람이 탄원했다고 판결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며 “대체로 2심 판결이 유지되는 사례가 많은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이 지사 측이 절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정치인이 지지층을 확보하는 것은 좋지만 위기에 처했을 때 지지층을 동원해 극복하려는 선례가 되거나 포퓰리즘으로 가지 않게 경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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