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황우석 사태 벌써 잊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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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논문 조작 당사자들은 이제라도 스스로 반성하고 학계에서 물러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대학도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재발 방지책을 갖춰야 진실에 기반한 학문적 풍토가 조성될 수 있습니다."

서울대 교수 71명은 올 3월 정운찬 당시 총장에게 이 같은 내용의 성명서를 전달했다.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에 대한 서울대 징계위의 결정이 내려진 직후였다. 황우석 교수에게 파면, 강성근.문신용 교수에게 정직 3개월, 이병천.안규리 교수에겐 정직 2개월의 징계가 각각 내려졌다. 이때만 해도 서울대 구성원들은 국민의 좌절감과 사회적 파장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4개월 뒤인 7월 최근 안규리 교수가 서울대병원 신장내과 분과장에 연임됐다. 2년 임기의 분과장은 과장 밑의 보직이지만 레지던트 선발 등 내과의 운영을 전담하는 중요한 자리다. 안 교수는 황우석 전 교수의 대변인 역할을 했었다. 논문 조작 의혹이 불거진 지난해 말엔 미국으로 건너가 성격이 불분명한 황 전 교수의 돈 3만 달러를 김선종 연구원에게 전달했었다. 병원 관계자는 "분과장은 승진이 아니라 일정 연배가 된 교수들이 돌아가면서 맡는다"며 별문제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뿐만 아니다. 서울대는 2억9600만원의 연구비를 횡령한 혐의가 검찰에서 드러나 징계위에 재회부된 이병천 교수에게 정직 3개월의 징계를 14일 내렸다. "연구윤리와 도덕성 확립 차원에서 중한 책임을 묻기로 했다"는 게 서울대 교무처가 밝힌 징계 사유다. "복제 개 '스너피' 연구 성과와 발전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참작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 교수는 논문 조작에 정직 2개월, 3억원 가까운 연구비 횡령에 정직 3개월이란 징계를 받은 셈이다. 5개월의 정직이 끝나면 다시 교단에 설 수 있다.

특정 교수를 희생양으로 삼아 대학 밖으로 쫓아내 그의 학문적 성과를 사장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국민을 상대로 한 사기극으로 판명된 사건에 어떤 형식으로든 개입했다면 그에 따른 책임을 지고, 일정 기간 자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안타깝게도 이번 사건의 진원지인 서울대는 누구보다도 빨리 '황우석 사태'가 남긴 교훈을 잊고 있는 듯하다.

권근영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