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협상 또 결렬 파업에 우는 울산 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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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노사가 여름휴가 전 임금협상 타결에 사실상 실패했다. 장기파업에 따른 손실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24일 울산공장 본관에서 12시간이 넘는 마라톤 임금협상 끝에 회사 측이 제시한 7만8000원(기본급 5.1% 인상, 호봉제 도입분 7335원 포함)의 임금인상안을 거부,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노조는 노조창립기념일인 25일 하루 노조창립기념일 휴가를 마친 뒤 파업과 협상을 병행할 방침이다. 하지만 노사 간 잠정협의안이 마련되더라도 3일간 노조원들에게 공고한 뒤 찬반투표를 실시한다는 규정 때문에 타결은 여름휴가(29일~8월 6일) 이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파업 20일을 채운 24일까지 현대차의 매출손실액은 1조2651억원으로 사상 최대치(2003년의 1조3106억원)에 육박했다. 현대차의 임직원은 4만8000명이지만 500여 개 협력업체 임직원 4만6000여 명을 포함하면 울산 인구 110만 명 중 30%의 생계가 현대차에 달렸다.

#장면 1=24일 오전 현대자동차의 크고 작은 협력업체가 모여 있는 울산 효문공단. 공장마다 기계는 멈춰 있고, 공장 마당에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워 문 근로자들의 표정엔 허탈감이 역력했다. 평상시라면 땀에 젖은 노동자들의 일손이 바쁘게 움직일 시간이지만 적막감마저 돌았다.

#장면 2=같은 날 새벽 울산 중구의 역전시장. 음식점 주인들이 한창 장을 봐야 할 시간이지만 한산했다. 맥빠진 상인들은 물건에 쌓인 먼지를 털거나 1000원짜리 몇 장이 전부인 돈 주머니를 매만지며 애타게 손님을 기다렸다. 과일 좌판을 연 한모(73) 할머니는 "안 그래도 대형 할인점 때문에 손님이 줄었는데 파업 이후에는 매일 썩은 과일 내다 버리기에 바쁘다"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시작된 현대차의 부분 파업이 20일째 계속되면서 울산의 지역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소형 구조물(브래킷)을 프레스 20여 대로 찍어내 현대차와 1차 협력업체에 공급하는 C사 직원들은 기계를 닦거나 공장 마당에 모여 앉아 시간을 날리고 있었다. 현대차 파업 초기에는 일손을 놀릴 수 없어 생산을 계속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재고를 쌓아놓을 데도 없다. 지난해 250억원 매출에 영업이익 6억원을 기록한 이 회사는 6월부터 줄어들기 시작한 작업 물량이 7월 들어선 반 토막 나면서 이미 10억원 이상의 매출 손실을 봤다. 파업이 며칠만 더 지속하면 한 해 적자가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이 공장 노동자들의 시급은 3500원 안팎으로 현대차 근로자의 절반이 채 못 된다. 8시간 정규 근로시간에 3시간 잔업을 꽉 채워야 한 달에 100만원 조금 넘는 월급을 만질 수 있지만, 전 직원의 3분의 1이 무급휴가를 떠난 상태다. 휴가 중인 직원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쉬는 만큼 임금이 줄어드는 데다 현대차 노조가 파업 일정을 이틀 단위로 통보하고 있어 언제까지 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 회사 김모(53) 사장은 "현대차 직원들은 파업기간에 못 받은 임금 대부분을 각종 '격려금' 명목으로 챙기지만 적자를 목전에 둬 직원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현대차 파업 20일째인 24일 울산시 북구 효문공단에 있는 한 협력업체의 생산라인이 멈춰 서 있다. 울산=송봉근 기자


현대차 협력업체의 이런 고통은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역전시장.중앙시장 등 재래시장 매상은 파업 전보다 10~20%씩 줄었다. 재래시장의 주요 고객인 중.장년층 서민들과 식당 주인들이 파업의 직접적 영향을 받고 있다는 얘기다. 30년째 역전시장에서 방앗간을 해 온 김모(69)씨는 "시장 상인이 몇 개월 먹고살 돈을 한 달이면 버는 사람들이 매년 파업부터 하고 보는 심사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시장 앞에서 1시간째 손님을 기다렸다는 택시기사 최모(53)씨는 "지난 주말엔 10시간을 뛰었는데 5만원도 못 벌었다"고 했다. 주말 손님이 뚝 끊겼기 때문이다.

반면 현대자동차 임직원과 울산의 중.상위 소득층이 찾는 백화점.할인점은 파업 이후 오히려 매상이 느는 이상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울산의 유흥가 밀집지역인 삼산동과 현대차 인근 식당가 등도 큰 영향이 없어 보였다.

울산=이기원.임장혁 기자<jhim@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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