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남아共 존 쿠체는] 이데올로기의 허구성 폭로한 反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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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소설가 존 쿠체(63)는 이미 장편소설 '추락''야만인을 기다리며''페테르부르크의 대가' 등이 국내에 번역 소개돼 국내 독자에게 낯설지 않다.

쿠체의 이번 문학상 수상으로 남아공은 1991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네이딘 고디머에 이어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두번 배출한 나라가 됐다.

1940년 남아공의 케이프타운에서 태어나 영국.미국으로 옮겨다니며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다 영문학자가 된 쿠체의 문학적 이력은 화려하다. 첫 작품 '더스크랜즈'에 이은 83년 작품 '나라의 심장부'가 남아공 최고 권위의 문학상을 받은데 이어 후속작 '마이클 K의 삶과 세월'로 영국 최고의 문학상인 부커상을 수상했다.

69년 부커 맥코넬에 의해 제정된 부커상은 해마다 1년간 영연방 국가에서 영어로 쓰여진 소설 중 수상작을 선정하여 수상하는 영국 최고 권위의 문학상이다.

쿠체는 99년 '추락'으로 부커상을 또 한차례 수상, 부커상을 두차례 수상한 최초의 인물이 됐다. 때문에 존 쿠체는 해마다 유력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거론됐고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스웨덴 브롬베리 출판사의 일바 아베리는 "수년 동안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소설가 쿠체가 후보로 거론됐다. 올해는 아마도 그가 수상자가 될 것 같다"고 말했었다.

쿠체의 소설에 일관되게 적용되는 하나의 문법이 있다면, 그것은 제국주의자와 원주민, 가해자와 피해자, 식민주의자와 피식민주의자, 백과 흑 등의 이분법에 의존하지 않고, 체제에 순응하기를 거부하는 진보적인 인물을 내세워 체제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안으로부터 폭로한다는 점이다.

한편 그런 체제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신도 자유롭지 못하고 이데올로기 구축에 공모했음을 부각시킨다.

최근 국내에 번역된 '야만인을 기다리며'에 등장하는 치안판사도 자기 고백을 통해 자신의 과거가 자신에게 유리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야만인들'을 억압하고 식민화하는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와 연루되어 있다는 점을 내비친다.

야만인들의 편을 들어줌으로써 제국주의자인 졸 대령에 의해 감옥에 갇히게 되는 치안판사는 명백하게 정의를 표방하는 자로서, 야만인들에게 행해지는 제국주의적 폭력과는 담을 쌓고 있는 정의로운 진보주의자로 그려진다. 그러나 그의 고백은 결국 그 자신도 제국의 이데올로기에 암암리에 물들어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노벨상 수상작가이자 쿠체의 동료작가이기도 한 네이딘 고디머는 그를 가리켜 "종달새처럼 날아올라 매처럼 쳐다보는 상상력을 갖고 있는 작가"라고 표현했다.

고디머는 쿠체의 수상 소식을 접하고 "무척 기쁘다. 그는 훌륭한 친구이자 위대한 작가다. 굉장한 일이다. 그는 남아공으로 돌아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쿠체에게 노벨상을 안긴 스웨덴 한림원은 쿠체의 작품세계를 "다양성의 보고"라며 "그의 어떤 책도 같은 얘기를 되풀이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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