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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기업' 만들어 수익률 높인다는 국민연금…"코스피와 차이 없어"

중앙일보

입력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국민연금 책임투자 활성화 방안 및 경영참여 목적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 공청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국민연금 책임투자 활성화 방안 및 경영참여 목적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 공청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착한 기업’은 수익률에서도 ‘착한’ 기업일까. 국내 증시의 ‘큰 손’인 국민연금이 착한 기업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하면서 투자자의 관심이 이들 기업의 성과에 집중되고 있다.

코스피 1년 수익률 2.47% 기록할 때 #KRX ESG 사회책임경영지수 2.29% #SRI 펀드 평균 수익률 2.66%로 유사 #"착한 기업 투자, 주주 가치 증대 효과" #"과한 경영 개입으로 시장 수익률 저하"

 국내 증시에 115조원을 투자한 국민연금이 앞으로 횡령ㆍ배임 등 범죄를 저지르거나 사익 편취를 하는 ‘나쁜 기업’에 대해 이사 해임 요구 등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키로 했다. 위탁 운용사를 선정할 때도 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ESG) 등을 반영하는 책임 투자 요소를 반영할 방침이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공개한 ‘국민연금 경영 참여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의 내용이다.

 국민연금이 투자하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더 짊어지도록 하고, 그런 ‘착한 기업’에 더 투자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논란은 이 지점에서 빚어진다. 연금 가입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운용 성과다. 사회적 책임이라는 선의를 앞세워 투자 수익률을 희생한다면 가입자의 반발을 피할 수 없다.

 이러한 지적과 논란을 의식한 듯 양성일 보건복지부 인구정책실장은 “책임 투자는 리스크 관리를 강화함으로써 위험 대비 수익률을 높여 장기 수익률 제고에 기여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복지부 등의 주장대로 실제로 리스크 관리를 강화한 ‘착한 기업’의 장기 투자 수익률은 시장 평균 수익률을 앞질렀을까. 실제로 이를 따져봤다.

‘착한 기업’ 수익률은 결국 코스피 수익률에 수렴

 17일 한국거래소와 에프앤가이드에 의뢰해 코스피 수익률과 ‘착한 기업’의 수익률을 가늠할 수 있는 KRX ESG 사회책임경영지수, 국내 사회책임투자(SRI) 펀드의 평균 수익률을 비교해봤다.

 KRX 사회책임경영지수는 배당과 사회적 책임, 기업지배구조 등의 수준을 따지는 ESG 평가에서 우수한 등급을 받은 국내 상장 기업들의 주가 수준을 지수화한 것이다. SRI 펀드 평균 수익률은 국내에 설정된 30개 펀드가 대상이며, 에프앤가이드에 의뢰해 산출했다.

코스피와 KRX ESG 지수 추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코스피와 KRX ESG 지수 추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해당 지수를 분석 결과 ‘착한 기업’ 투자 수익률은 코스피 수익률과 동일한 흐름을 보였다. 유의미한 차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13일 현재 코스피 1년 수익률이 2.47%일 때, 같은 기간 KRX ESG 사회책임경영지수의 수익률은 2.29%, 국내 SRI 펀드의 평균 수익률은 2.66%를 기록했다. 코스피 지수를 기준으로 KRX 수익률은 다소 낮았고, SRI 수익률은 다소 높은 수준이다.

 2년 수익률을 따져봐도 코스피 지수와 큰 차이가 없었다. 2년 수익률의 경우 코스피가 -16.12%를 기록할 때, KRX 지수는 -15.02%, SRI 펀드는 -13.63%였다. 5년 수익률의 경우 KRX 지수가 21.78%로 코스피 8.26%로 유의미하게 높은 수익률을 올렸지만, SRI 펀드는 7.91%로 오히려 코스피 수익률을 밑돌았다.

 수익률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요소는 투자 전략이었다. 세 지표의 수익률은 산출 기간과 시점에 따라 엎치락뒤치락했지만 흐름은 거의 유사했다. 같은 SRI 펀드의 수익률을 가른 것은 투자 전략이었다. 투자전략에 따라 수익률(5년)이 -5.58%에서 43.37%까지 천차만별이었다. ‘착한 기업에 투자하면 장기 수익률이 제고된다’는 주장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는 이야기다.

코스피 지수와 착한 기업 수익률 비교.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코스피 지수와 착한 기업 수익률 비교.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장기 수익률에 도움” VS. “시장 위축해 수익률 저하”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연금이나 펀드가 투자 회사를 상대로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행위가 투자 수익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긍정적으로 보는 전문가들은 ‘착한 기업’은 근로자와 주주 등 이해관계자 관리를 통해 극단적 위험을 줄이고,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 주주 가치를 증대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장윤제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연구원은 “ESG 평가 상위 기업에 대한 투자는 시장의 흐름을 따라가면서도 일반 기업보다 투자 위험을 줄일 수 있을 정도일 뿐, 시장 흐름을 크게 벗어나 엄청난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는 건 아니다”며 “그런 만큼 ‘착한 기업’ 투자는 장기적ㆍ안정적으로 자금을 운용해야 하는 국민연금에 적합하다”고 말했다.

 반면 정부가 제시한 ‘착한 기업’ 기준이 투자 활동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각종 기준에 맞춘 투자를 하다 부진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설정되면 기업들의 투자 기준이 바뀌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기업들이 예측한 목표 성과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코스피 시장의 대주주 격인 국민연금이 과도하게 개입하면 주식 시장 전반이 침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착한 기업’의 정의를 시장주의적 관점에서 내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윤을 늘리는 것’이라고 이야기한 게 정답”이라며 “기업에 다른 사회적 책임을 강요하기보다 기업이 오랫동안 살아남아 근로자에게 월급 주고, 주주들에게 배당하고, 국가에 세금 내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명예교수는 올해 초 국민연금과 행동주의 펀드 강성부 펀드(KCGI)가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에 대해 적극적으로 경영 참여 주주권을 행사한 이후 상황을 주목했다. 그는 “당시 한진칼이 배당성향을 높이고, 유휴자산인 송현동 부지를 팔겠다고 하자 그 당시에는 주가가 올랐다”며 “당시 주주에게는 이익이 되겠지만, 장기적으로 기업 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대한항공의 주가는 지난해 말 3만원대 초반에서 주주 친화정책을 발표한 올해 2월 이후 3만5000원대 이상으로 올랐다. 하지만 최근 다시 2만원 중후반대로 내려앉았다.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것과 주주 가치 증대 정책을 요구하는 것은 결이 다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SRI 펀드 중 1년 수익률이 가장 높은 KB주주가치포커스펀드(16.89%)를 운용하는 정용현 KB자산운용 매니저는 “투자 수익률을 놓고 보면 사회 책임보다 주주 가치 증대 방안으로 접근하는 게 맞다고 본다”며 “배당, 자사주 매입 등 주주 가치 환원 정책을 요구할 때도 계속 기업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광우 기자 kang.kwang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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