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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폐는 성인오락실을 노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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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4일 오후 성인 오락실이 줄지어 있는 서울 중랑구 장안동 사거리. 대낮인데도 2층에 자리잡은 한 오락실엔 고객 10여명이 일명 ‘바다이야기’와 빠찡코 게임기에 연신 1만원짜리 지폐를 집어넣는다. 하지만 1만원을 넣어도 게임은 10분을 채 넘기지 못한다. 한번에 3만∼4만원을 넣는 사람도 있다.

서울 청계천 상가에서 게임기를 들여왔다는 오락실 주인은 “게임기마다 지폐 인식기가 있지만 돈인지 아닌지만 확인할 뿐 진짜 돈인지 가짜 돈인지는 가리지 못한다”고 말했다.

최근 봇물처럼 늘어난 성인 오락실이 위폐의 새로운 유통 루트로 떠올랐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요즘엔 성인오락실이 위폐범들의 집중 공략 대상이 되고 있다"며 "이곳에서 적발된 위폐가 전체의 41.2%에 달한다"고 말했다.

위폐 유통은 이처럼 적발이 허술한 곳을 교묘히 뚫어내며 갈수록 지능화하고 있다.

◆ 늘어나는 속도가 무섭다=올 상반기 적발된 위폐는 모두 1만4311장. 지난해 같은 기간 적발된 위폐(6345장)를 두 배 이상 웃도는 것은 물론, 지난해 전체 적발 건수(1만2889장)마저 이미 1400여 장이나 앞질렀다. 특히 1만원권 위조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상반기 적발된 1만원권 위폐만 9872장으로 지난해보다 6배나 급증했다. 액수는 적지만 1000원권 역시 452장이나 발견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적발 장수(62장)의 7배를 웃돈다.

월별 적발 건수도 크게 늘었다.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월평균 400여 건 미만이던 1만원권 위폐 적발 건수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600~800여 장으로 급증했다.

◆ 갈수록 지능화한다=첨단 컬러 프린터와 스캐너 등 기술 발달로 위폐 사범도 급속히 '대중화'되고 있다. 위폐 기술도 몰라보게 정교해지고 있다. 1950,60년대처럼 어렵게 인쇄기를 돌리지 않아도 PC와 프린터로 눈 깜짝할 사이 '가짜 돈'을 찍어낸다. 한은 관계자는 "지난해 이후 2400여 장이나 시중에 유통된 1만원권 위폐의 경우 은화(숨은 그림)는 물론 은선도 감쪽같이 위조돼 일반인들은 사실상 식별이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서울경찰청 수사2계 관계자는 "관련 장비가 대중화되면서 위폐사범의 연령도 급격히 낮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체 위폐 사범 중 15%가량이 19세 미만의 미성년자라는 게 경찰의 추산이다. 주로 30,40대인 위폐사범 역시 신용불량자가 적지 않아 경기 둔화나 양극화 등 어두운 경제 상황과 무관치 않다.

성인오락실 등과 더불어 각종 대여점, 위폐 감지 능력이 떨어지는 구형 현금인출기(ATM)도 위조사범이 노리는 주요 타깃이다. 특히 1000원권 위폐는 주로 서울 지역 동전교환기를 통해 유통되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위조지폐는 사람들의 이동이 집중되는 오후 7~9시에 가장 많이 사용돼 이 시간이면 긴장을 늦추지 못한다"고 말했다.

◆ 첨단 기술이 해법=갈수록 극성을 부리는 위폐 범죄를 막기 위한 당국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당국이 가장 힘을 쏟는 방어책은 역시 첨단 기술 보강이다.

이미 한은은 5000원권 신권으로 큰 성과를 거뒀다. 한은 관계자는 "홀로그램 기법 등 첨단 위조 방지 기술을 대폭 보강한 덕에 위조된 5000원권 신권 11장은 유통 현장에서 즉각 적발됐다"고 말했다.

한은은 2007년 보급될 1만원권 신권도 이런 첨단 방어기술로 '무장'시킬 계획이다.

표재용 기자, 김정혁.이종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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